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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눈감고 그려보면

끝없이 펼쳐진 대자연의 풍광이 생각을 압도하는 나라입니다.

에스파냐!

고요한 가운데 들리는듯한 대자연의 서사시를 들으며 지나온듯합니다.

갑자기 다가온 도시의 복잡함이 전혀 답답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동양문화가 아닌 유럽 새로움을 접하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이곳이 아시아권이라면 다른 마음이었을 거 같습니다.

살아가며 새로움이 있는 곳에서 알아가는 즐거움을 표현하자면 빈 주머니에 차곡차곡 담는다고 표현하고 싶군요.

생소한 부분이 많기에 신기한 것은 아니지만, 알아가는 즐거움이 참 좋습니다.

차창 밖으로 바라보는 바르셀로나,

지나가는 사람의 표정은 무언가 신나는 그런 표정입니다.

버스는 여행객을 카탈루냐 광장 이 바라보이는 한 장소에 내려주고 떠납니다.

 

 

 

 이곳 광장 주변에는 절대 차량을 오래 정차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모든 관광객을 내려놓고 버스는 다른 곳에 가서 있다가

정해진 시간에 태우러 온다고 합니다.

간단하게 한 바퀴 돌아서 올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정해진 코스로 돌아서 올 수 있는데 돌아오는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 광장에서

 일상의 행복과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이 광장 주변에는 백화점 쇼핑몰 레스토랑 등이 즐비하여

쇼핑의 즐거움을 느끼며 순간의 한가로움도 느낄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도 많지만, 비둘기도 가득한 이 광장은

주변을 둘러보려면 그래도 꽤 시간이 걸려야 합니다.

둘레도 한참 걸어야 하지만

여유로움 가운데 활기찬 모습이 좋았습니다. 

 

 

 

광장은 빠트릴 수 없는 휴식공간인 것 같습니다.

시원한 물줄기가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합니다.

메마른듯한 날씨 같은데 어디서나 잘 가꾸어진 분수가 있어 품어져 나오는 물줄기로 인해

마음에 시원함을 더해주는 것 같습니다.

유럽은 가족과 함께하는 생활이 몸에 배어있어 시간 날 때마다 가족과 함께

산책도 하고 자녀와 놀아주는 것을 즐긴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신세대 부모는 자녀와 시간을 많이 보내주는 것 같아  참 보기 좋습니다.

 

 

 

 

 

 

유럽 특유의 밝게 웃어주며 포즈를 취해주는 사람 숙녀분 고마워요.

김~치가 아니고 스마일 해줘서,

자유로운 나라답습니다.

많은 사람의 모습이 때로는 너무 자유분방한 듯하지만 절제된 자유로움이 있는 에스파냐 같기에,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저 젊음도 부러워집니다.

 

 

이층 버스가 지나갑니다.

여행객은 이 층에 앉아 투어를  한껏 즐기는 것 같습니다.

믿음직한 사람과 함께 하는 자유 여행이 젊음의 특권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용기가 부족해서일지 모른다고 생각을  한 편에 밀쳐놓았습니다.

시간일정이 짜여 있어 부러움을 바람과 함께 보내고 돌아섰습니다.

여기 느림의 미학 가운데 행복한 사람이 사는 나라입니다.

차량 통행이 잦으나 복잡하다고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듯하여

나도 모르게 미소로 바라봅니다.

바르셀로나는 이 거리로 직진하여 곧게 나아가면 아름다운 지중해의 푸른 바다를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곧게 뻗은 도로 또한 자랑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카탈루냐 광장 빙 둘러 위치한 건물 중 한군데입니다.

백화점 입구는 아니고 여행 안내소입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죽 내려오니 셀 수 없이 많은 팸플릿,

참 이곳에서 각종 티켓과 안내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나는 이용하지 않았지만 자유 여행가들은 매우 고마운 곳이 될 것 같았습니다.

 

에스파냐 여행 중 맛있게 먹었던 식사시간은  저는 매일 아침 호텔에서 먹게 된 음식입니다.

그중 제일 맛있었던 음식은 토스트와 과일입니다.

시시한가요?

여행 내내 토스트하고 과일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진심으로!

오랜만에 한식을 먹을 수 있는 음식점에 갔습니다.

오랜만에 고국 음식을 먹게 되니 함께한 분들의 얼굴도 갑자기 생기가 도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저는 해외 여행지에서 한식은 변형된 맛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맛있게 식사했지만 저는 토스트와 과일이 더욱 맛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독특한 입맛인지...

 

 

이곳을 중심으로 죽 돌아보니 온통 쇼핑 천국이라고 할 수 있군요.

식사후 골목을 빠져 나오다 우르르 상점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한컷 찰칵 돌아섰습니다.

딸과 함께 여행을 왔다면 딸이 좋아할 상품 천지인것 같습니다.

 

그동안 대부분 고요함을 즐기는 여행을 했는데 바르셀로나는 사람도 자동차도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차량정체도 있지만, 자동차는 클랙슨 마구 눌러대는 소리 나지 않습니다.

도로가 막혀 진행 속도가 느리거나 많이 지체된다 해도

조용히 여유 있는 기다림의 미학을 마음껏 즐기는 바르셀로나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앞차가 조금만 천천히 출발해도 빵빵거리거나 가차 없이 앞지르기하고

어떤 사람은 심한 말 하는 사람이 있는데 뭐지 이 복잡한 도시, 도로는?

참 좋았습니다.

이것 또한 진심 부러웠습니다.

느림의 미학을 즐기며 나도 이런 자연인의 마음을 많이 가지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 국가

모두 다 행복한 일이 많아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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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버스는 한산한 지역을 지나

빌딩과 차량이 많아지는 곳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바르셀로나 시내에 진입했다고 하는

가이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붐비는 인파와 오토바이 자동차 빌딩과 건물이 가득한 

오랜만의 도시의 복잡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는 어디지? 그것도 잊어버렸습니다.

경기장인듯하고 아닌가 아휴 내 정신이야 그렇게 잊어버렸습니다.

할 수 없이 모를 때는 다시 역사 속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지요.

 

궁금하신 분은 바르셀로나 가셔서 알아보셔요~~~

 

 카탈류냐 미술관 전경

 

 

  우리나라도 과거 오래전부터

삼국으로 나뉘었다. 통일이 되었다. 더 작은 소국으로 된 적도 있고

우여곡절이 많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완전 100%의 융합은 아직 안 된 2% 부족합니다.

 

 지역마다 특색과 자존심을 가지고 사는 것이

현재의 세상을 살아가는것 인지도 모릅니다.

 

 

 

 스페인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복잡한 역사를 가졌다고 합니다.

 

이곳의 로마 지배 시절의 옛 이름은 히스파니아라고 하는데

히스파니아는 로마제국 일부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히스파니아는 로마제국의 중요한 부분으로 성장했었다고 합니다.

 

중세 초반에는 게르만 족의 지배를 받았었고

그 시대 이후에는 이슬람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독교신앙으로 무장한 기독교 군사의 오랜 투쟁과 국토회복운동 결과로

전쟁 끝에 드디어 1492년에 기독교 왕국이

 주먹 모양의 이베리아 반도에 세워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 후 절대적인 왕을 중심으로 한 정치와

식민지 개척을 추진하여 얻어진 금은보화 여러 물품으로

가장 강력한 대국으로 성장 자리 잡게 된 무적 대국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쟁과 내분으로

해지지 않는 에스파냐 대국이란 명성은 오래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국가 간의 전쟁도 그렇지만 내분으로 인한 국가의 황폐함은

진정 마음아픈 일이지요.

후회와 회한만 남는 국가의 재앙입니다.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하고 에스파냐는 20세기 초반에서 중반까지

프란시스코 독재정권 아래에서 가장 부강했던 나라

해지지 않는 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여곡절을 겪은 자존심이 강한 에스파냐는 드디어 1975년 독재 정권의 막을 내리게 되고

에스파냐는 유럽을 넘어 전 세계를 주름잡던 기백을 살려

고도의 경제발전과 사회적으로도 안정을 이루게 되어 1986년 유럽연합에 가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선사시대 이베리아 반도는 약 3만5천 년 전에 피레네 산맥을 넘어

현재의 이베리아반도로 크로마뇽인과 비슷한 인류가

 진출하게 되어 거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증거로 북부지방의 알타미라 동굴에는

선사시대 유적으로 매우 유명한 벽화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기원 1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벽화도 존재할 뿐 아니라

 아타 푸에르카 지방에서 발견된 새로운 유적지에서는 오래전

백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 지역에 살았던 이베리아족과 켈트족은 지중해 쪽과 남서쪽에 모여 살게 되었고

이후 대서양 쪽으로도 옮겨 거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코임브라와 브라카와 세고비아에는

 지금도 켈트족의 고대도시의 흔적들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이베리아족은 그들이 사용하던 언어를

이베리아 반도의 에브로 라고 긴 강의 이름으로 남겼다고 합니다.

이베리아족의 후손 중 한 갈래인 바스크족은

피레네 서부를 점령하여 살았다고 하는데

바스크족의 특별한 언어와 풍습은 지금도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원전 300~500년 사이에 페니키아인이 거주하게 되고

  그리스인도 당시 지중해연안에 교역중심인 식민도시를 건설하여

활발한 교역을 펼쳤다고 합니다.

그중에 현대까지 남아있는 도시로

 엠프리아. 마라가.아리칸테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페니키아인이 세운 도시로는 카르테지가 남아있다고 하는데

페니키아인은 로마제국에 정복당하게 되는데

로마와 대적한 그 유명한 한니발의 아버지 하밀카르 바르카가 세운

카르테 헤나가 현재까지 도시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의 이름은 당시 도시 중 하나인 바르키노에 남았는데

바로 이 이름에서 바르셀로나가 유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복잡한 이 나라의 역사 당시에는 아하 그랬구나! 이해한 듯 대답했지만,

한참을 복습해야 하는 먼 나라 남의 나라 역사입니다.

육십오기 전에 어느 정도는 반복 학습하고

이 계기를 통해 에스파냐 문학도 탐독하고 싶어지는

도전의 마음이 새록새록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내 취향의 눈이 번쩍 뜨이는 에스파냐 문학입니다. 두어 개라도 알고 가려 합니다.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 사는 곳 바르셀로나입니다.

 카탈루냐 시민은 카탈루냐 나라로의 독립을 원하여

아래 아파트에 국기 보이시죠

저렇게 국기를 내걸어 놓는다고 합니다.

 

 

 

 에스파냐인으로 불리기보다는

카탈루냐왕국 국민으로 불리기 원하는 열망이 가득하다고 합니다만,

그 염원 때문에 이곳뿐 아니라

다른 지역 바르셀로나지역은 가는 곳마다 띄엄띄엄

옛 카탈루냐 왕국의 문장과 국기를 걸어놓은 곳이 여러 곳이 눈에 띄게 됩니다.

 

 그러나 정치적 기득권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살짝 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지만,

태극기나 애국가를 듣거나 볼 때

눈물이 핑그르르 도는 나의 마음도 그러한데 그건 당연한 자부심입니다.

 

 

 

 버스로 지나가며 바라본

아름다운 건축물에 압도되며 여행을 했는데

나도 우리나라 옛것에 관심 좀 가지며 살아야겠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예술의 도시 에스파냐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미술관입니다.

 

카탈루냐 왕국의 후손임을 자랑스러워하며 

옛 영광을 그리워하고 자부심을 느끼고 사랑하기에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절대 분열이 아닌 자부심의 표현으로

능히 그럴 수 있다고 여깁니다.

 

 

 

 버스가 도심 진입하니 정말 독특한 건물이 나타났습니다.

 

이 도심에 예술은 몰라도 아름답게 우뚝 서 있는 건물에 함께한 일행도 감탄사를 보냅니다.

이 건물이 성 가족성당을 최초 설계한 천재건축가 가우디 작품이라고 합니다.

 

 

 

 

 

 

 천재 건축가의 작품을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인체의 내부를 모델화 하여 설계를 했다고 합니다.

 

 

 

 버스는 시내를 돌아 바르셀로나 중심 백화점이 있는 광장을 빙 둘러

쇼핑 천국이라고 할 정도의

 번화한 거리에 우리 일행을 내려주었습니다.

 

 

 

 람블라스거리 산호셉시장 여기저기 빙 둘러봤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지나갔습니다.

어떤 분은 여행이 취미라고 하는데

동생이나 친구와 함께 오는 것이 즐겁겠다는 생각도 하며 살짝 부러운 생각이 들었답니다.

 

 

 

 세상 어디 자기 마음대로만 할 수는 없으니까,

 젊은 사람은 제외하고 남편과 함께 온 나는 생각하기를...

마음만은 낭만 소녀로 거리를 이 나라를 문화를

돌아보는 것도 자유로움을 즐기는 여행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다를 사랑하며 자유를 꿈꾸는 나를 생각하는 시간, 저 방황하는 엄마 아닙니다.

단지 나를 생각해보자는 느낌이 

에스파냐 마지막 여행지에서 들게 되었습니다.

아디오스

 

에스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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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호흡기질환

어떤 사람은 가볍게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심각하게 여기고

저는 심각하게 여기는 쪽입니다.

자기 뜻대로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지나간다면 좋으련만

격리 대상자가 늘고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가 많아지고 있다는

보도를 접할 때마다 염려되며 속히 이 메르스 전염공포가

바람 가듯이 하루빨리 지나갔으면 합니다.

 

 

 

 

 2014년 6월 15일

파란 하늘을 바라보니 왠지 마음이 넓어지는것 같습니다.

착각,

녹색의 들판이나 산하를 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콧노래가 절로 납니다.

오늘은 바르셀로나 경기장에 왔습니다.

1992년 올림픽을 개최한 이 장소는 지대가 높은 곳에 있어 탁 트인 시가지를 바라보면

그 많던 차량과 인파가 생각나지 않는 듯합니다.

매우 잘 다듬어진 바르셀로나입니다.

바르셀로나 경기장을 관람하러 왔습니다. 

 

 

 

 

 예술과 문화의 도시 스페인

과거에 세계를 쩌렁쩌렁 호령하던 에스파냐!!!

지구의 4억 5천여만 명이 에스파냐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막강한 힘을 가졌던 에스파냐임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지구촌 한가족!

 세계 많은 사람이 드나들고 있는 에스파냐 바르셀로나입니다.

16세기 가히 최강의 국가였던 나라 ,바르셀로나에서 1992년 올림픽을 개최했었지요.

 

 

 

 올림픽 주 경기장을 둘러보는데 높은 곳에 있어서인지, 쭉쭉 뻗은 도로가 좋습니다.

도로를 쭉 가다 보면 지중해가 나온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는 그 이유로

더욱 새로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관람 후 돌아 나오는데

 길에 죽 늘어선 어린 학생의 대열이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견학 온 것 같았어요.

자유로움 가운데서 학습하는 것은 보기 좋았습니다.

급식비와 교육비가 무료인 점이 부럽긴 하지만

앞으로 우리나라도 그렇게 되겠지요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 나이가 들다 보니

 부모보다 더 소중한 국가관을 가지게 됩니다.

나의 조국 자유 대한민국의 황영조 선수가

바로 이곳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당당히 ( 마라톤 )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그 감격의 나라입니다.

바르셀로나와 경기도가 공동으로 세웠다고 하는데

이곳에 기념 석을 세우기 위하여 

실제 수고하신 분이 있으시겠지요.

그분께도=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곳에 오랫동안 살고 계신 분이지 않을까요?

경기도라고 하지만

몸소 나서서 열심히 이 일을 이루기 위해 실질적으로 수고하신

현지 교포분께 감사드립니다.

 

 

 

 역사와 예술의 나라 스페인

찬란한 고도 바르셀로나 이곳에

동방의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 경기도

그 힘찬 빛이 같이 어리어 있다네

아, 이 뜨거운 우정 만방에 영원하여라

 

 

 

 

 달리고 있는 바르셀로나 마라톤 올림픽 영웅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달리던

 황영조 선수를 떠올리게 되더군요.

여기 태극기가 새겨져 있는데

 마음은 저기 세워진 돌에 태극기를 새겨넣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여 여행객의 노곤함 때문에

잠시 걸터앉는 곳이 될까 봐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사람은 그렇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많은 수고와 노력과 정성 끝에 이곳 바르셀로나에 대한민국의 흔적을 새기도록 해주신 분께 감사드리며

그날 감격의 함성이 들릴듯한 이곳 몬주익 언덕을 내려왔습니다.

아디오스

 

에스파냐

 

 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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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각 나라는 저마다의 문화와 풍습이 있지요.

당 시대를 살아갈 때는 문화의 소중함을 모르고 지나치기 쉬울지 모릅니다.

새로운 것을 접하게 되면

왠지 모를 강력한 끌림이 있어 자신도 모르게 새로움에 빨려 들어가는 듯합니다.

딱히 도드라질만한 점이 없다 해도

새롭다는 점에서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흐르고 흘러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기 예술과 문화의 나라, 도시 국민답게

문화적 가치보존에 대하여 많은 불편함이 있어도

기꺼이 감수하는 국민성이 뛰어나지 않나 라는 생각마저 하게 됩니다.

 

대가 없이 후손을 위하여

불편함을 감수하며 보존하는 그 마음에 박수를 쳐 드립니다.

왜 =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독특한 문양의 식기가 많이 전시 판매되고 있는데

오랜 역사 속에 이슬람. 기독교 가톨릭 시대를 거쳐 가며

전해 내려오는 예술적 가치가 손상되지 않고

 장인의 혼이 담겨 빚어낸 결과물이 많은 사람의 발걸음과 

여행했던 시간이 일 년이 지났음에도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오래전 그 시대로 마음이 달려가는 듯합니다.

 

올레~~~

 

 

 

 기하학적인 문양의 식기를 비롯하여

특히 칼 종류가 많이 전시 판매되고 있는데

그 긴긴 세월 동안 숙적 이슬람을 몰아낸 승리를

 기념 기억하기 위한 부분도 있을지 모르겠다는

 나 혼자만의 생각도 해본답니다.

아깝다. 칼 한 자루 사 왔어야 했는데 큰 아쉬움입니다.

혹여 훗날 다시 가게 된다면 하나 소장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여기까지 기념품 상점은

톨레도 산토토메 교회 앞 기념품 판매장입니다.

 

 

 

이곳은 포르투갈 가는 길에 들렀던 휴게소에 있는 기념품 상점입니다.

이곳에서 맛있는 점심도 먹었는데, 식사 후 둘러본 이곳도 칼 천지입니다.

 

 

 

 이곳은 돈 조반니의 집 입구에 있는 기념품 판매장입니다.

돈 조반니의 집은

지금은 여행가들을 맞는 숙소로 이용된다고 하니 세비야를 가시는 분은

돈 조반니 집에서 머무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뜨거운 태양을 막아줄 모자를 저도 이곳에서 구매했습니다.

준비해간 모자로는 불편한 부분이 있어 사게 되었는데 어울리거나 안 어울리거나 마음에 꼭 드는 모자였습니다.

한화 오천 원에 샀어요.

맨 아래쪽 핑크와 같은 모양의 저는 하늘색입니다.

당시에는 모르고 지나쳤는데

지금 생각하니 여행에 많이 미숙하여 놓친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곳은 론다 투우장에 있는 기념품 판매장인 것 같습니다.

동물에 대하여 별생각 없이 대하며 살았는데

딸과 함께 사는 강아지로 인하여 동물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관광 지역에는 기념품 판매소가 있지만

물건을 사라고 강요하지 않는 점이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도록 합니다.

궁금하여 물으면 말이 통하지 않음에도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려 전달하려고 애쓰는 그 점이 더욱 좋았습니다.

물건 하나 팔면 그만이라기보다

관광객에게 그 기념품에 담긴 의미를 알게 하려 애쓰는

 그 얼굴에는 자신의 직업을 즐기며 살아가는 모습도 느끼게 했습니다.

 

 

 

 

 

누에보다리 지역입니다

이곳의 기념품 판매장은 골동품과 비슷한 물건들로 전시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떠올리게 하는 종이 많이 있습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 스쳐 간 많은 순간이

지금도 바람을 타고 기억해달라는 듯한 느낌의 누에보다리였습니다.

 

 

 

 예술적인 소양이 풍부했다면 이 아름다운 많은 기념품을 통해서도

헤아릴 수 없는 이야기를 알게 될 텐데 듣고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려

 다 기억하지못한것을 애석해 하며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나의 자녀가 젊음의 때에 두루두루 세상구경도 하고 마음의 양식도 차곡차곡 채워가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세상을 살아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게 됩니다.

오늘을 감사하며 이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게 되었으니 행운입니다.

내일의 부분은 내 자녀와 모든 청년을 통하여

국가의 이익이 될 다양한 양식이 가득히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국방 정치 경제 문화가 아름답게 성장하고 잘 다져지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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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자연이 노래하는 곳을 찾아 달리는 버스에 의지하여 나아갑니다.

넓은 국토를 자랑하듯이 달리는 내내 띄엄띄엄 세워진 건물은 

각양각색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가다 보면 반듯한 신시가지의 건물들이 때로는 큰 규모의 건축물은 무슨 회사인듯하기도 합니다.

지나는 곳마다 다양한 건축으로 세워진 곳을 카메라에 담으며

생각하기를 척박한듯하지만 

 그 나름대로 잘 자라는 나무를 심어놓아 어떤 곳이든지 황량한 곳이란 없고 사람은 각기 살아갑니다.

 

지역의 곳곳마다

아름다운 건축예술 문화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세워져 있는데

멀리서 바라본 저곳은 꼭 왕궁 같은 느낌이 들었답니다.

파에야 발상지라고 하는 발렌시아입니다.

 

 

 

 달리는 중간 벌판에 우뚝 세워진 건물 같은 줄 알았더니 그곳이 우리 점심 먹을 곳이라고 합니다.

깨끗하고 정갈함을 느낄 수 있는 이곳에서의 점심은

 너도나도 만족한 식사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법이 있듯이 이곳 발렌시아에서의 식사는

마지막 후식으로 먹게 된 남성 어른 주먹만 한 큼지막한 오렌지로 마무리했는데

정말 맛있는 오렌지였습니다.

 

 

 

 

 

달리고 달리다 드디어 발렌시아 구시가지에 도착했습니다.

유럽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광장이. 여기도 어김없이 여행가를 맞이합니다.

차에서 내려 아치형의 문을 통과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이곳에 남겨진 문화와 역사를 감상하며 걸어가게 됩니다.

발렌시아 구시가지에 있는 비르헨광장 입니

 

 

 

발렌시아는 3월에 축제를 한다고 합니다.

빠야라고 하는 축제라는데 380개의 축제 위원회가 있다는데

한 위원회에서 2개씩의 모형 물을 제작 행사에 내놓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합계 760개의 모형 물과 축제 행렬이 거리를 운행한다고 합니다.

삼월의 축제기간에는 절대 쉽게 잠을 이룰 수 없다고 하는데

구경하실 분은 3월 초에 여행하시면 볼 수 있다고 하더군요.

발렌시아 성당입니다.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인이 쭉 늘어선 곳입니다.

이슬람 영향을 받아서인지

타일로 만든 여러 기념품이 가득하여 고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에스파냐의 특징인지 노점에서 기념품을 판다고 해도 호들갑스러운 판매는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관광객 하나하나가 자신의 마음에 드는 기념품을

자유롭게 신중하게 구매할 수 있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복합적인 문화가 공존하는 발렌시아는 예술과 과학의 도시라고 합니다.

이곳에는 과학박물관과 오페라 극장이 유명하다고 합니다.

또 밤에 보는 건축물이 더욱 아름답다고 하며

이 오페라극장의 건축물은 사람의 갈비뼈 등을 토대로 지어진 예술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버스 타고 지나가면서 설명으로 듣고 아하 그렇구나 로 끝을 맺게 되었습니다.

 

 

이 탑의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보면 더욱 아름다운 시가지를 감상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번에 오르는 것은 생략했습니다.

우리 일행의 시간적 제한이기도 하고 이 주변을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오래전에

미 켈레 테 탑 내부에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그림이 있었다고 합니다.

 

 

 

 성당 내부의 제단이라는 곳에는 총천연색으로 성화가 그려져 있었지만

가이드님께서 그다지 큰 비중을 두지 않는 것 같기에 간단히 둘러보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성당 내부는 입장료 우리 돈으로 팔천 원을 내면 성당 내부를 돌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성찬식 때 사용된 성배를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습니다.

마음이 아릿하지만

그럴수록 더 복을 빌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자유로운 나라 자유로운 인생은

각 사람에게 주어진 다양한 삶의 한 부분이라고 하지만

이방의 여행객에게 밝은 미소로 환하게 웃어주는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 가운데 이 여성의 미래가 평탄하기를 빌었습니다.

아름다운 아가씨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빕니다.

 

 

 

오늘의 숙박할 장소는 발렌시아입니다.

도로 곳곳마다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어 여행가의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죽 길게 늘어선 곳은 자전거 도로입니다.

많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지만 자전거 도로는 언제나 비어 있는 것 같습니다.

 

 

 

발렌시아 대형매장입니다.

 이곳의 매장은 일찍 문을 닫는다고 하는데 9시가 넘으면 물건을 구매할 수 없습니다.

이곳에 가니까  와인이 가득하여 수를 셀 수가 없을 정도더군요.

약간의 과장된 표현이지요.

그 정도로 종류가 매우 많고 가격도 완전히 저렴했어요,

선물을 염두에 두 신분은 이 매장에서 사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깨끗한 도로는 바로 수고한 손길이 있어 가능한 일이지요.

우리나라에도 도로의 공중질서 잘 지켜야 하겠

 수고하신 미화 담당하시는 분들께 감사드려야겠지요,

아침 일찍 숙소 주변을 둘러보다

일찍 나오셔서 이렇게 도로 미화를 위해 수고하신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발렌시아를 들르려면

시간적 여유로 오시는 분은 엘체라는 야자수 마을을 들러보라고 하더군요.

마을이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라고 합니다.

 

 

 

 

 

 

 아침 일찍 이어서인지 도로는 한산합니다.

정돈되어있는 자전거도로가 이곳에서 끝나는가 봅니다.

그래선지 이어진 도로에 상점의 테이블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마음대로 내놓을 수 없다고 하더군요,

일정한 금액을 지급하고 이렇게 도로에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을 수 있다고 하는

에스파냐 발렌시아입니다.

 

 

 

바르셀로나 성가족성당을 가려는 마음이 앞서서인지 들러보는 그 정도로

 잠시 머물러보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아쉬운 점은 론하 라는 건축물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 다른 나라를 둘러봄에 모두를 볼수 없는 것이기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섭니다.

발렌시아 에서는 밀려 오는 피곤함에 일찍 꿈 나라로 갔습니다.

발렌시아

 

 아디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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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함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이젠 손을 호호 불어야 하는 움츠러드는 계절,

따뜻했던 유월에 다녀온 에스파냐 여행의 순간은 생각만 해도 즐겁습니다.

새로운 나로 떠났던 에스파냐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린 곳입니다.

만 가지의 모양을 하고 우뚝 솟아있는 몬세라트 바위산,

최고봉에 오르지 못했기에 더욱더 저 높은 곳의 풍광이 마음을 유혹했습니다.

최고봉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거대한 수도원 마을로 보인다는 몬세라트입니다.

 

 

 

 

이곳은 1987년 자연공원으로 지정되어 희귀식물도 많다고 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약 삼백만 명이 이곳을 찾아온다는데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몬세라트는 많은 등산객도 즐겨 찾는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그중 대부분은 가톨릭 성지를 순례하기 위한 성지순례 팀들이 많이 온다고 합니다.

 또 하나 토요일 마다. 몬세라트 수도원 광장에서는 여러 전통공연이 열린다고 합니다.

 

 

 

 

 

현재에도 집중적인 여러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데

 동굴 내부에 그려진 성모 마리아의 그림이 발견되기도 했다는군요.

이 그림의 연대는 880년에 그린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합니다.

또 하나 이곳 몬세라트 수도원은 라모 레네 타 라고 불리는 검은 마리아상이 있다는데  

수도원에서 30분 정도 걸리는 산타 코바동굴에서

 12세기경에 발견되었다는데 원래부터 검은색이 아니라

신도들이 밝힌 등불에 오랜 세월 동안 그을려 검어졌다고 합니다.

수많은 신도의 기도와 정성이 쌓였다는 것이기도 하겠군요.

 

 

 

세계 대전이라는 혼돈이 암흑이, 높은 고지에 있는 몬세라트도 피해갈 수 없었는지,

1811년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점령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을 때

몬세라트 수도원에서도 많은 신부와 성직자들이 희생됐지만,

이 마리아상만큼은 신실한 믿음의 신도들에 의해 지켜졌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도 세계각지의 믿음의 사람을 맞고 있다는군요.

이곳이 이렇게 믿음의 성지가 된 것은 기록에 전하기는 서기 888년

처음으로 기도원과 같은 작은 건물이 생겨나고

11세기부터는 베네딕트회 수도원이 지금의 위치에 자리 잡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전해 내려오는 설에 의하면 이 마리아상을 성 누가 가 조각했다고 전해지고

성 베드로가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수도원이 하나둘씩 세워지기 시작하던 때

 이 마리아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했으나

옮기기 어려워 이곳에 그대로 두고 수도원을 짖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수도원 자체도 온통 기암괴석으로 둘러쳐진 바위산을 등에 지고 건물이 지어진 것 같습니다.

모든 건물의 뒤편에는 어김없이 각가지 형상의 바위가 보호하듯 수도원을 감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 크고 작은 건물이 있는데 그중에

산 중턱 725m에 있는 수도원은 대성당. 목회자센터. 성직자의 길 등

신의 대언 자로서 살아가기를 서원하여

그 길을 걷는 사람을 위하여 수양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듯합니다. 

 

 

엄숙한 분위기를 느끼는 늘 조용한 곳이어서

고요 속에 신의 부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신의 음성을 신의 뜻을 헤아리는 수도자가 있는 곳이며 신자들도 믿음을 구하는 장소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나폴레옹 전쟁 때 파괴된 것 말고는

외세의 침략을 한 번도 받지 않았다고 하는 이곳이야말로

조용히 신의 뜻을 알 수 있는 곳인 것 같습니다.

 

 

 

 

1,881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검은 성모상이 카탈루냐 수호 성모로 지정된 후

수도원의 낡은 곳은 헐어내고 고치기를 거듭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모상과 함께 에스콜라니아 소년합창단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몬세라트는 가톨릭 종교음악의 발상지로 알려졌다는데

 13세기에 생겨난 에스콜라니아 합창단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소년 합창단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매일 오후 1시와 5시에 거행되는 미사에

 소프라노의 맑고 청아한 소년 합창을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몬세라트는

시간마다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듣는 것도 좋지만

이곳의 수많은 바위와 산책길을 그냥 지나치기보다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이곳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감동을 경험해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고 합니다.

퇴적물이 굳어져 이루어진 바위산은 천여 개의 다른 형상을 하고 있고

바위마다 자갈이 촘촘히 박혀있어 때로는 그 사이에서 조개껍데기도 볼 수 있어

이곳이 바다였다는 증거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5천만 년 전 지중해 일부였던 카탈루냐땅은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여

지금과 같은 바위산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며

얼마 전 1982년에 산 정상에서 바다 동물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는데

이곳은 바다에서도 그다지 멀지 않고 겨울 평균기온이 5.6도 여름에도 10.6도 정도의

 따뜻하고 기온변화가 적은 지역이라고 합니다.

기온변화가 심하지 않고 일 년 내내 비가 많이 오지 않아

이곳의 식물과 수목은 상록수가 많으며 둘레가 한 뼘 정도의 작은 나무라 해도

 수령 100년 이 되는 것이 많다고 합니다.

 

 

 

 

가뭄에도 잘 자랄 수 있도록 가시를 감추고 있는 식물도 많고

 멧돼지 도마뱀 산양 등 다양한 야생동물이 서식하기에 최적의 산이라고 합니다.

산 곳곳마다 나 있는 포장도로가 있는 것을 보면

 예전부터 수도원이 많아 사람이 살아왔을 텐데

이렇게 동물의 개체 수가 많은 것은 험한 산이기에 가능하였을 거라 여겨집니다.

 

 

 

 

1986년 산불로 800헥타르 가 불타고

1971년과 2000년에 내린 큰비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도 여기저기 많이 있다고 합니다.

특히 2000년에는 비와 함께 여러 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수도원에서 오르내리는 궤도열차의 철로가 묻히고 광장이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화재와 산사태로 흔적이 남아있는 곳도

여기에서는 별다른 복구를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한 예로 등산로가 끊어진 곳에 다리를 놓아 새로 길을 정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길을 우회하여 다지고 표지판을 설치하는 그것이 전부라고 합니다.

복원은 자연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몬세라트를 바라보는 스페인사람의 생각이라고 합니다.

 

 

 

1박 2일 코스로 종주까지 다양한 코스가 있다는데 가장 편하게 출발하는 건

이곳 수도원을 출발점으로 하면 편하다고 합니다

수도원 뒤로 난 계단 길을 올라가면 봉우리 사이로 난 계곡 길이나

7부 능선을 따라 30여 분을 오르내리면 지금은 폐허가 된

산 베네트 성당이 나오고 계속 산길을 따라가면 코끼리길. 임산부. 성직자 책등

형태에 따라 별명이 붙은 봉우리를 지나게 되며

2시간 계속 산길을 오르다 보면 최고봉 산 제로니 봉에 오르게 된다고 합니다.

정상에는 표지판과 함께 멀리 피레네 산맥과 평원이 펼쳐져 있어 

풍요를 골고루 허락하신 신의 큰 은혜를 입은 나라라고 하더군요. 

 

 

 

가수 이영화가 부른 복음성가입니다.

이 복음성가 가사가 모든 신자의 소원입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 지금 가는 이 길이 정녕 외롭고 쓸쓸하지만

내가 가야 할 인생길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 지금 가는 이 길이 정녕 고난의 길이라지만

우리가 가야 할 인생길

아무도 몰라도 좋아 내 주님 가신 이 길은 나의 꿈 피어나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아무도 몰라도 좋아 내 주님 가신 이 길은 나의 꿈 피어나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모든 신앙인이 걸어가야 할 길이지만 마음으로만 소원하는 길 그러나 가고 싶은 소원이 가득한 길 입니다.

도우소서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 여

간절함이 가득한 신앙인의 길 입니다.

 

 

 

멀고도 먼 나라 에스파냐를 잠깐의 여행으로 알기 어렵겠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이 나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멋을 조금 이나마 알게 되어 행운입니다.

새로운 것에 대하여 막연한 호기심이라기보다는

이젠 하나씩 알아갈 때마다 갈증이 나는 건 나는 아무래도 에스파냐를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 해도 어디 나의 조국만이야 하겠습니까

에스파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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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해야 할 것 한가지 케이블카 타고 올라가며

협곡의 장관을 감상할 것,

저는 해보지 못했어요,

가격은 그다지 비싸지 않다고 하니 꼭 해보세요.

저는 패키지 시간일정으로 못해봤어요.

무척 아쉬움 중 하나입니다.

 

 

 

굽이를 돌아갈 때마다 색다른 풍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부러진 길을 돌아 막 멀미가 몰려오려고 하는 순간

 도착했습니다.

멀미 때문에 심각해지려는 찰나에 도착하여 다행이라 여기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이 운전하면 멀미하지 않는데 탑승자로서는 가끔 하게 됩니다.

그에 반하여 비행기 멀미는 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게 된답니다.

뱃멀미는 많이 해요.

휴 하고 숨을 고르며 가이드님의 보충설명을 듣고 난 후 냉정히 돌아서

이 아름다움과 천의 얼굴로 맞이하는 몬세라트에 들어갑니다.

그 누구도 말없이 얼굴이 상기되어 열심히 사진을 찍어갑니다.

 

이곳은 해발 1,236m의 바위산이라고 합니다.

스페인어로 톱으로 깎아 만든 바위산이라는 의미가 담긴 몬세라트입니다.

 산 중턱에는 산타 마리아 몬세라트 수도원이 있고 기독교 성지로 되어있다고 합니다.

 바실리카 성당이 자리한 이곳은  진귀한 보물이 소장되어 전시되고

우리 일행이 갔을 당시에는 지하 부분을 공사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보물 중 이곳은 나무로 만든 성 모자상으로 유명하다고 하며

수도원에는 미켈란젤로. E 크래고,등등 에스파냐 여러 화가의 작품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검은 성모 마리아상을 많은 사람이 방문하여

 손을 만지며 소원을 기도하면 이루어진다는 설이 있어성지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880년 한 무리의 목동이 높은 산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에 그 무리가 보니 천사가 노래하고

바라보는 아이들의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하게 되는 일을 겪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천사의 방문은 한 달 동안 지속하였고 산속의 동굴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후일 마을의 사제는 이곳을 둘러보다 동정녀 마리아 이미지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훗날 11세기에 올리바 수도원장이

 이곳에 작은 수도원을 세우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현재는 80명의 수사가 이 험악한 바위투성이의 산을 찾는순례자를 맞이하고 있다고 합니다.

순례자는 그들의 마음에 가지고 온 마음의 짐을 내어 놓고

 영적인 답을 얻고자 지금도 끊이지 않고순례의 발걸음은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수도사는 순례자를 위한 기도와 식사를 나눈다더군요.

 

 

 몬세라트 산의 모든 곳은 자연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있다고 합니다.

이 몬세라트 최고봉의 이름은 산 제로니 라고 불린다는데

제로니봉까지 이어지는 하이킹 코스를 오르자면 

 험한 바위투성이 산답게 곳곳마다 볼거리가 많아 마음을 빼앗길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는군요.

 호호호

오르는 산책로도 한두 군데가 아니라고 하니 가까이 사는 사람은 큰 특혜를 받은 사람이군요,

 

 

 

 

 카탈루냐어로 톱니 모양의 산이라고 불린다는 이곳은

바르셀로나에서는 당일 여행으로 가능한 곳이지만

이 바위산의 구석구석을 감상코자 하신다면 이곳에서 가까운 호텔 ( 아바트 시스네로스 ) 라는 호텔에서 묵거나

( 마르세트 ) 아파트를 예약 묵으면 편리하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박물관이 있어 박물관 투어도 할 수 있고

박물관 건물은 네 마리 고양이라는 별도의 애칭이 있다는데 오히려 별칭이 더 많이 알려졌다고 합니다.

이 박물관은 이집트 석관부터 21세기 조각상 등 1,300여 점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또 하나 몬세라트 소년합창단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는데

이곳에는 이미 14세기부터 음악학교가 있었고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각가지의 모양의 바위는 지구 위에 존재했던 오래전 여러 동식물의 모양을 닮아

그 어떤 전시장보다 화려함을 느끼게도 합니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신의 작품중 이 곳은 에스파냐에게 내려준 또 다른 특혜라고 생각합니다.

 

 

 

 

 오래전 이곳은 바다였다고 합니다.

지각변동으로 지금의 이러한 바위산으로 우뚝 솟아오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과거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신비한 과정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과학적으로 접근 분석하는

지금의 시대에는 대단한 자연 현상이었고 놀랍다는 표현을 하게 됩니다 .

공룡의 화석을 닮은 듯한 바위도 여럿 있다고 합니다.

 

 

 

 

 몇천 년 전에는 어떠했는지 모르듯이

또 몇천 년이 지나면 어떻게 달라질는지 모르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먼 후일에는 지금 이 순간을 많이 확실히 알 수 있도록

 기록이 돼 타임캡슐이라는 것으로 보관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더욱 많아지는 미지의 시간이기에

오늘을 살아가는 지금 이 시각을 충실히 살아가야 하는 것이 답인듯싶습니다.

 

 

 

 

 순수 자연의 걸작품을 바라봅니다. 눈이 마음이 생각이 호강하는 시간입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조각가의 상상 속에서 현실로 만들어지는 것도 대단하지만

인간도 엄밀히 따져보면 자연의 한 부분이기에 신의 작품을 감상하며 고요 속에 젖어듭니다.

이곳에는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는 없지만

이곳에는 절묘한 작품이 우뚝 솟아있어

이 바위산의 기상을 보며 그 너머에 계신 온 천지의 주인 되신 분을 그려봅니다.

바위산과 우리, 바위산과 나, 나와 창조자를 생각하게 합니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 많아도

신의 창조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과는 결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바위로 이어진 천혜의 요새 같은 이곳은 그야말로 절경이라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장엄한 바위가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 불어오는 세찬 바람도 막아주듯이

 오래전 이곳 몬세라트는 스페인 독립의 중요한 거점을

유지하기 위해 중요한 곳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끝없이 둘러싸인 기암괴석이 신의 솜씨가 아니고는 사람의 솜씨로는 절대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바라볼수록 느껴지는 마음은 살며시 신을 향한 두려움이 스미는 것 같기도 합니다.

흐트러진 마음을 다시금 정돈하고자 마음의 옷깃을 여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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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을 달려 다음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그 시간이 지루할 거 같으나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광을 절대 놓칠 수 없답니다.

달리는 버스에서 유리창을 통해 찍는 관계로

반사되어 찍히지만, 나에게는 아까운 순간의 사진이기에 망설임 없이 블로그에 올립니다.

후일에 읽어보며 그 순간의 감동을 생각하려고 말입니다.

블로그 덕분에 에스파냐 역사는 대충 순서가 정해집니다.

아까워 여기에 간단히 적어봅니다.

 

 

 

 이베리아 반도란=

아프리카에서 북쪽에서 건너온 이베리아인들이 사는 땅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건너와 식민지를 만든 사람이 자리 잡은 곳이 에브로 강 가입니다.

에브로가 차츰 바뀌어 이베로가 되었고 이베리아라는 이름이 생겼습니다.

에브로 성서에 나오는 지명입니다.

 

 

 

 이베리아 최초주민은 북부 아프리카계의 이베리아인입니다.

유럽중앙부에 살던 켈트족이

기원 600년경에 원주민 이베로 족과 결혼을 하게 되어  켈티베로족이 생겨납니다.

 

 

 

 기원 10세기경 스페인을 점령한 사람은 페니키아인  

 ( 지금의 레바논 시리아 이스라엘 북부의 해안 마을에 살던

 가나안 사람이라고 합니다. )

 

 

 

 고대지명인 페니키아에 살던 페니키아왕국이 저물어 가고

기원 6세기에는 카르타고 제국을 건설한

 페니키아인은 해외교역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베리아 반도의 풍부한 광물을 노리는 로마의 침략으로

기원 2세기부터 600년간 로마의 지배를 받기에 이르렀다는군요.

 

 

 

 기원 5세기경 로마의 힘이 약해지자 (한니발) 서고트족이 로마를 무찌르고

 에스파냐를 정복했으나

서고트왕국은 왕위계승문제로 혼란을 극복하지 못해서

 711년 이슬람 옴미아드왕조에 침략을 받아

붕괴합니다.

 

 

 

 이때부터 이슬람 왕국이 지배하게 되고

8세기 초 이베리아 반도의 3분의 2를 지배하게 됩니다.

이때 수학 과학 건축 장식 예술 등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여

스페인의 경제문화에 크게 이바지하기에 이릅니다.

 

 

 

 이슬람에 쫓기다가 살아남은 기독교도는

 바위투성이에 다 비가 많이 오는 북쪽 산악지대로 피신하였다고 합니다.

 

 

 

 참 이베리아 반도에 복음을 전했던 사람은 사도바울이었다고 합니다.

이베리아 북쪽을 중심으로 세력을 넓히던 기독교인들이

다시 일어서 국토회복운동을 시작하여

레온왕국 카스티야왕국 나바라왕국 아라곤왕국 카탈루냐 왕국 등

 기독교 왕국이 탄생하게 됩니다.

 

 

 

 9세기 초 카를로스 대제가 에브로 강 북방변경 하나인

나바라 변경을 기반으로 산초가르세스가 나바라 왕국을 세웁니다.

11세기 초 산초대왕 때 전성기를 맞아

 카탈루냐 지방까지 정복했고그곳에 대왕의 넷째아들

라미로 1세가 아라곤 왕국을 창건합니다.

 

 

 

카스티야는 아라곤의 침입을 받아 1076년 아라곤에 병합되었다가 1134년 독립합니다.

그 뒤 프랑스왕가의 혈통을 지닌 왕에 의하여 통치되었는데

카를로스 3세 때 가장 번영을 이루게 됩니다.

 

 

 1512년 이 왕국의 에스파냐 쪽 영토는 페르난도 5세에게 점령되었으나

나바르 왕국의 앙리 4세가 프랑스 왕이 될 때까지 계속 통치합니다.

이 작은 왕국이 오랫동안 존속할 수 있었던 거는 이 지역에 사는 바스크인 이

유럽계의 특이한 언어문화를 간직하면서 로마 이슬람 게르만에게 굴복하지 않은 데 있다고 합니다.

 

 스페인 북부 산간지방에 살고 있는 바스크족은스페인 중앙정부와 갈등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하긴 갈등을 겪지 않는 지역과 나라는 없지요.

사람 사는데 필수적 으로 존재하는 것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바스크인의 기원에 대하여는 확실한 기원을 모른다고 하고

학자들 간의 의견도 다른 학설을 각자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학자는 모든 인종의 선조라는 설까지도 있다고 하는데

바스크 언어에 대하여는 바스크어와 비슷한 언어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고 관련 있는 언어도 없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언어학자들이 절망을 느낀다고까지 하는 바스크 언어라고 합니다.

민족성은 아직 한 번도 나라를 건국해본 적이 없고

스페인 문화와 역사 민족특성 등과는 전혀 다르다고 합니다.

 

바스크인은 항상

강인한 행동과 저항으로 집요하게 독립을 요구할 뿐 아니라

강인하고 고집불통이긴 하지만 신사적이고 예의 바르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신들의 독립을 간절히 추구하고 있으며

지역적인 정체성을 유지하고 독립에 대한 열망이 너무 간절하여

에스파냐 국가 전체의 정치적 안정에 고민스러운  요소가 된다고 합니다.

 

 

 

레온왕국 중세후기는 현재의 레온을 중심으로

발렌시아. 바야돌리드. 사모라. 살라망카 등지를 영토로 삼았답니다.

 

 

 

 가르시아의 아들 오르도뇨 2세는 수도로 오비에도에서 레온으로 옮기고

레온왕국을 창건합니다.

왕국의 국경에는 많은 성채가 세워지고 카스티야라고 불렀는데

 11세기 전반에 변경백 (행정을 담당하는 지방관 ) 페르난도 곤살레스가

레온에서 독립하여 카스티야왕국을 세우기에 이릅니다.

 

 

 1037년 레온왕국은 카스티야의 페르난도 1세에게 병합되어

레온 카스티야 왕국이 되어 알폰소 7세가 죽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그의 뒤를 이은 페르난도 2세는분할상속에 의해

레온왕으로서 독립하였으며 왕국은 카스티야와 관계없이 통치합니다.

레온과 카스티야의 최종적인 합병은 카스티야 왕 페르난도 3세 때에 이루어집니다.

 

 

 

 카탈루냐 지방은 2차 포에니 전쟁 이전까지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 있어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였습니다.

카르타고의 장군 하밀카로 바르카가 점령한 도시라는 뜻으로 바르셀로나라고 불렀답니다.

 

 

 

 이후 히스파니아 시테리오르라는

속주로 편입되다가 Bc 27년 로마제정이 시작되었을 때

 타라고나를 수도로 하는 히스파니아타라코넨시스라는 속주로 개칭되기에 이릅니다.

 

 

 이후에 사두 (네명의 담당으로 나누어통치 ) 정치 때 디오 클레티아누스에 의해

카르 타기엔 시스 로 나누어지다가 5세기부터 로마제국이 쇠퇴해지면서

서고트족이 침입하면서 서고트왕국 일부가 되었지만

 711년 이슬람교를 앞세운 무어인들의 정복으로 그 영향력 아래에 있게 됩니다.

 

 

 

 801년 프랑크왕국의 샤를마뉴대제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 원정하여

 이슬람 세력을 공격한 다음 에스파냐 변방 백령은 여러 백작령으로 나뉘어 있었다고 합니다. 

 

 

 

 프랑크왕국에 신종하는 백작이었던 바르셀로나 백작이

 다른 변경 백령을 상속 흡수하면서 우월한 지위를 획득하기에 이릅니다. 

 

 

 

 바르셀로나 백작을 중심으로 한 카탈루냐 지역을 카탈루냐군주국으로 부르게 됩니다.

다만, 카탈루냐군주국은 독립국으로서 실체가 있는 왕국이나 공식적이 아니라

 그저 바르셀로나 백작이 봉건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한 지역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카탈루냐 군주국의 군주는 단지 바르셀로나 백작의 위치에서

 주변영토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서프랑크왕국의 후계가 끊어지고 파리의 백작이 프랑스 왕으로 등극하자

아라곤왕국은 어린 여왕 페트로 낼 라가 즉위하자

 이웃 나라 카스티야왕국의 침공을 우려해 바르셀로나의 백작 라몬 바랑게 4세와

 페트로넬라 여왕을 약혼시킵니다.

 

 

 

당시 여왕은 고작 1세에 불과했다고 하더군요.

라몬은 아라곤 여왕의 남편자격으로 아라곤을 통치하여

두 사람의 장남 알폰소 2세가 아라곤왕 바르셀로나 백작의 지위를 계승합니다.

 

 

 

 이로써 카탈루냐지방은 아라곤 왕국의 새로운 중심부가 되었고

원래의 아라곤 내륙지방은 중심지에서 밀려나게 되고

이렇게 해서 연합되어 아라곤 연합왕국이 되었답니다.

 중략

어휴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요.

 

 

 1492년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 왕과의 결혼으로

 두 나라의 통합은 이루어졌으나

 각기 왕위는 그대로 유지하여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에스파냐사람의 애국정신은 세계 어느 나라에 비길 바 없고

저항정신은

군대 농민 노동자 급기야 산적 떼까지도조국 에스파냐의 독립을 위해 떨치고 일어나

군대와 맞서 싸워 6년에 걸친 투쟁 끝에 전쟁은 승리로 끝을 내게 되었지요.

 

 

 

 이 공은 모든 에스파냐국민과 집시에 이르기까지 에스파냐의 독립을 위해 모든 국민이

동원되었다는 결과이지요.

이사벨 여왕은 집시들의 공로를 인정하여 집시는 세금을 내지 않도록 했다는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합니다.

마지막 알함브라 궁전을 끝으로 에스파냐는 완전한 독립국을 이루게 되었지요,

 

 

 

 이사벨 여왕은

 완전한 가톨릭 국가를 만들기 원하여  모든 이슬람인과 유대인은

모든 걸 그대로 두고 몸만 떠나라는

 알함브라 칙령을 선포 모든 이슬람인과 유대인이 쫓겨나게 되었답니다.

 

 

 그때에 유대인은 떠나면서 에스파냐는 우리를 버리고

 가난을 택했다고 말하며 떠났다고 합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 동안

그렇게 많은 일을 겪고 난 에스파냐

지금 에스파냐는 다시금 도약하기 위하여 비상의 준비를 하고 있는 선진국입니다.

 

 

 

 여행은 상상할 수 없는 세계로 이끌어가는 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시간은 미지의 시간이고 계획할 수는 있지만, 그 결과는 예측할 수 없고

새하얀 도화지에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모르는 두근거림의 시간입니다.

여행에서 얻게 되는 것은 그 크기를 셈할 수 없는

무한인 것 같아 더욱 오랫동안 마음과 생각에 남아 있을 거 같습니다.

사람과의 함께하는 시간은 그 대상이 누구든지 서로 주고받으며 사는 것이라고

그것이 어떠하든지 무조건 주기만 하는 건 인간의 교류 가운데는 없는 것 같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꼭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사랑도

보이지 않지만, 사랑이 오가는 가운데 서로의 인연의 끈이 든든한

부모 자녀로 이어지고 든든한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거기에 비하면 자연은 여행을 통하여 똑같은 자연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똑같지 않은 자연 거기에 똑같지 않은 생소한 문화 그리고 전혀 모르는 역사를 접하고 느끼게 되고

나도 모르게 마음속 깊이 새겨진다는 것을 정말 몰랐습니다.

뭐라고 할까 여행 다니며 머무는 곳마다

마음을 한 줌씩 놓으며 다닌다고 말할까 하여튼 그렇답니다.

달리는 차 창으로 바라보는 곳마다 아름다운 자연은 즐거이 기꺼이 아름다운 향연을 베풀고 있고 또 베풀어줍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많이 생각하게 될 거 같아요,

그래서 또 고맙다고 밖에 할 말이 없는

 그런 무가 아닌 유의 여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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