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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새로움의 유혹 

 인간의 삶과 마음도 타락의 길로 빠져감을 안타까워하던 그때, 

마음과 삶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신의 집뿐이라는 어느 출판업자의 믿음에 찬 확신에서

 1866년에 처음 계획되었다고 합니다.

 

 가족이 모여서 기도할 수 있는 곳으로 계획한 곳

 성가족 성당건축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성당의 중심점 또한 주인 되시는 하나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중심이며 육신의 가족 마리아와 요셉을 일컬어

 

 성 가족이라 이름한 성당이라고 합니다.

 

 

 

 

 

이 내용은 성서에 나오는 주기도문 중 한 부분의 기도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옵소서 쓰인 한글도 보입니다.

 

이 단어는 주기도문에 나오는 기도인데 인간에게 꼭 필요한 기도입니다.

 한 번에 많은 양식을 주옵소서 가 아닌 일용한 양식을 기도하는 문구에서

 

인간이 사는 동안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단번에 그치지 않고 

 

 순간마다 필요함을 말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세계 모든 나라 언어로 쓰인 기도문이 지금은 동판이 아니지만 

후일 동판으로 새겨질 거라고 합니다.

 

 

 

 

 

 

1,492개의 파이프 오르간과 고난의 예수님,

성당 중앙 예배당에는 1,492개의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고난의 예수그리스도를 보면서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공평하신 하나님은 인간 앞에 어두운 덫을 놓지 않고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비록 마음으로만 생각으로만 안다 해도  그 부분은 감히 사람이 평가할 수 없는 신과의 일대일의 관계라서
뭐라 불필요한 논쟁할 필요가 없는 사랑입니다.
타인을 비난하기보다 자신의 믿음을 지키며 타인이 손을 내밀어 청할 때 잡아주는 신자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유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켰노라 장담할 수 없는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52개의 기둥은 나무 모양으로 

 

숲을 표현하는 천장을 받쳐주고 있다는데

 

여러 기둥 중 (아랫줄 작은 사진) 붉은색 기둥

 

 중간에 있는 원형 그림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을 상징하는 

 

사자. 사람. 황소. 독수리의 그림이라고 합니다. 

 

 

 

 

 

 

 

신비함을 느끼게 하는 성당 내부 구조물은

 

 아침부터 저녁 또는 흐린 날에도  

 

각색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빛이 들어오는 각도에 따라 스테인드글라스에 반사되어 가지각색으로 비쳐

 

 보는 이 마음을 잔잔한 예술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비록 전문 지식의 부재로 구조물의 담겨진 뜻과 의미를 모른다 해도 

 

인간의 본성대로 느끼는 감동은 환상적인 부분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가우디의 죽음은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 생각해도 안타까운 죽음입니다.

산책하던 중 전차 사고로 중태에 빠졌지만 

부랑자로 오해하여 가까스로 극빈자를 위한 구호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나중 가우디를 찾아낸 친구는 다른 병원으로 옮기려 하나 

가우디는 나는 여기 가난한 사람과 함께 있겠다고 하며

 친구의 제의를 거절했고 

사흘 후 가우디는 숨을 거두고

 사랑하는 예수님께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성경에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듯이 

가우디가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교회는 

가장 성스럽고 아름다운 교회에 많은 사람의 기도가 끊이지 않는 

그런 교회를 지어 하나님께 드리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곳을 설계한 가우디의 정신세계는 감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가우디는 성당 앞면에 세워질 작품을 준비하면서 

시체에 석고를 발라 본을 뜨거나

병원을 자주 들러 죽은 환자가 있지 않나 확인하러 다녔고

인체 구석구석의 변화와 관찰을 했기에 비난도 받았겠지요.

어린아이 시체에서 석고 본을 떠놓은 것을 작업실 천장에 보관하여

영안실 분위기가 나는 작업실이었다고 합니다.

 

 

 

 

 

 

또 닭과 칠면조를 마취시켜 마취가 풀리기 전 신속히 본을 뜨기도 했고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인체에 대해 많이 알아야 했으니

정상이 아니라는 오해도 비난과 함께 받았을 거라 여깁니다.

근육분석을 위해 무덤까지 팠다고 하는 가우디

 

 성가족성당이 인간의 겉과 내부장기 혈관 등 

 

그 이상을 모델화하여 만들어졌다 해도

 

가우디의 신앙과 관련하여 생각건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존재임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는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가우디가 죽고 난 후 미완성인 성당을 놓고 논쟁이 일었다고 합니다.

 

미완성인 성당을 계속해서 지을 것인가 

 

아니면 모차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처럼 미완인 상태로 둘 것인가를 놓고

 

불꽃 튀는 논쟁 끝에 현재도 지어지고 있는 성당은

 

 과거에는 모금한 헌금으로 지었지만,

 

지금은 성당을 찾는 관광수입으로 지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기도 응답의 기둥이라고 합니다.

 

가시면 꼭 손을 얹고 눈 감고

 

 마음 깊은 곳에서 원하는 기도를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응답의 기둥이라고 합니다.

 

 많은 성도가 손을 얹고 기도했을 때 

 

개인의 소원보다 더 큰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믿음의 기도가

 

 더 많았을 것 같기에 꼭 손을 얹고 기도하고 돌아오세요.

 

 

 

 

 

 

성당 평면도라고 합니다.

 

세밀하게 모른다 해도 보는 순간 사람의 형상과 같습니다.

 

예수님 희생과 십자가가 생각나는 평면도입니다.

 

 

단체로 온 여행이라 시간 제한적인 면도 있어 아쉬움이 많습니다.

지하성당도 입구만 갔다 나왔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성당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2유로입니다. 

패키지여행으로 시간이 부족하여 오르지 못한 것입니다.

내려올 때는 나선형 계단으로 걸어 내려오는 곳이라고 하니까 더 아쉬움이 가득합니다.

지금도 체력이 부족한데,

후일에는 올라간다 해도 내려올 힘이 될지,

그래서 더욱 아쉬움이 많습니다.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곳에 있는 성당이 아닙니다.

 

복잡한 도시의 일상이 이어지는 곳에 우뚝 서 있고 

 

지금도 지어지고 있는 성가족성당입니다.

 

엄숙함을 요구하는 곳에 지어지지 않았지만,

 

완전하지 못하여 

 

반복된 실수와 잘못이 더해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이 살아가는 중심에 

 

위로와 격려의 선물로 지어진 것 같습니다.

 

스스로 이르기를 난 인간이야 그래서 할 수 없어 

 

난 신이 아니니 그릇된 판단과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자포자기할지 몰라

 

 인간의 삶의 중심에 신께서 더 가까이하셔 

 

 위로와 돌이킴과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려고

 

여기에 만들게 하신 

 

하나님 사랑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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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한복판 성가족성당 가는 길입니다.

그동안은 펼쳐진 대자연을 벗 삼아 여행했는데 

 

여기 천재건축가가 잠들고 있는 곳은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 옆에 위치하여 혼잡하고 

 

자동차 소음과 성당 공사 소리가 더해져 경건함을 찾기에는 

다소 많이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성당에 도착하여 정문을 들어서자 무언가에 압도당한 듯 

묵묵히 줄지어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리다 들어갑니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마음 한편에

 신께로 향하는 경건함이 간직되어 있는듯합니다.

 

바르셀로나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입니다.

 

 

 

 

 

 

가우디의 정신!

이 성당에 대하여 알고자 하기 전 먼저 

 

카탈루냐 정신에 대하여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정신세계와 뼛속까지 심어진 카탈루냐정신이 

가우디의 건축의 세계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카탈루냐인임을 자랑스러워했던 천재 건축가는

카탈루냐정신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어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격이라서

건축작업을 대충 대충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카탈루냐 정신이란= 스페인은 역사적으로

(바스케. 카탈루냐. 카스티야. 갈리시아) 

각각의 독립성을 가진 국가로 나뉘어 있었고

그중 지역성이 강한 카탈루냐와 카스티야의 갈등은 심했다고 합니다. 

 

 

 

 

 

항구도시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공업에 종사하던 하층민이 거주하던 카탈루냐와 카스티야는

 

신분. 지리. 사회적으로 추구하는 정책도 달라 잦은 충돌이 있었다고 하는데,

 

20세기 초 정권을 등에 업은 카스티야가 국가정책의 주도권을 행사하면서

 

 두 지역 간의 관계가 나빠지고 힘이 약한 카탈루냐는 늘 희생자였다고 합니다.

 

급기야 고유언어와 문화를 가진 카탈루냐민족의 독립성은

 

 점차 빛을 잃어 정치적 상황은 복잡해져 가고 위기를 맞게 됩니다.

 

결국, 스페인은 카탈루냐어 교육을 금지하고

 

 민족의 독립성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문화적 자긍심이 강한 카탈루냐인은 사라지는 언어와 문화를 되살리고자

 

(레나센샤) 카탈루냐 문예부흥운동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유문화와 옛 영광을 찾고자 하는 운동은

 

지식인 일부로 시작했지만, 예술 전 분야로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건축분야도 중세시대 자기 민족과 문화에 대한 향수를

 

 성당건축을 통한 고딕 복고양식으로 표현했고 

 

여러 분야에서 정체성 부활을 위해 중세를 재조명하고

 

변화와 혁신을 이루려는 운동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레나센샤 운동을 통해 찾고자 하는 고유 정체성에는

 

 가족애. 자연풍경. 가정. 종교 중 종교는 가장 중요한 중심점이었고

 

이 운동은 가우디에게 수공예기술에 대한 존경심과 

 

예술의 정직성을 깨우치게 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고향이 가진 대자연과 건축유적에 새겨진 카탈루냐정신에

 

 남다른 애정을 가졌던 가우디는 많은 영향을 받았고 

 

가우디의 작품에서 고유문화와 종교적인 색채는 작품 속에서도 쉽게 발견되고

 

특히 성가족성당은 카탈루냐만의 독창성을 표현하고 있는 건축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가우디는 건축 분야에 나무나 철골 같은 보강 없

 카탈루냐식 독특한 구조체로 재탄생시켰다고 합니다.

 

급변하는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찾아 몸부림치는 사회 분위기 속에 

뜨거운 열정을 안고 작품세계에 몰입하던 건축가 가우디는 

 

자신이 갖춘 능력과 시간을 부귀영화를 위해 사용하지 않고 

오직 자기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하는 데 온전히 바친

진정한 민족주의자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카탈루냐 민족은 가우디에게는 절대적인 존재였다고 합니다.

 온 세상에 카탈루냐를 알리고 빛낸 건축가 가우디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신 하나님의 일꾼이었던 것 같습니다.

 

 

 

 

 

운명의 사람 가우디!!!

순수 합리적인 건축이 절정을 이루던 시대에

 

 자유로운 곡선의 아름다움을 고집한 가우디의 건축은 

상상할 수 없는 뛰어난 것이었고 모든 관심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가우디의 건축작품을 폄하하는 사람 중에 

동물농장을 쓴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성가족성당을 놓고

 

 가장 혐오스러운 건물이며 혁명 기간에 손상을 입지 않은 점은

 많은 사람은 예술적 가치 때문이었다고 말하나 

 

 

자기 생각엔 무정부주의자들이 폭격할 기회가 있음에도 

기분을 망치지 않으려고 이 흉물스러운 건물을 피해 갔다는 표현을 했다고 합니다.

 

가우디에 대하여 여러 비난이 함께하는 것은 

가우디 개인의 삶. 축관. 개인사적인 일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우디의 친구나 제자에 의해 기록되었던 

 

가우디 어록이나 건축스케치마저 

1936년 7월 무정부주의자들이 파손시킴으로

 

 가우디의 인간적인 면과 생각들은 알 수 없는 베일에 쌓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가우디는 심한 비난을 받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다양한 작품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영감을 불어넣었다고 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의 고정관념은 깨트리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 분야가 어떻든지 기존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 하며

건축분야에 새로운 독창적인 방법을 놓고

 

 자신이 하지 않은 것에는 배타적인 점도 가미되어 많은 질시도 받았을 것 같습니다.

 

그 아무리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라 해도 인간은 질투와 시샘의 유혹을 

 

넘어서기 어려운 약한 존재이기에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생전에 가우디는 말이 없고 허름한 차림새에 

이상한 실험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괴짜라는 꼬리표를 항상 달고 살았다는데.

그러한 가우디의 성격을 묘사하는 말 중에는 

 

귀족적이면서 천박한 멋쟁이이자 방랑자. 

박식하지만 오락가락하는 자.

기지가 넘치지만 재미없는 사람. 등 

 

가우디의 행동으로 인해 왜곡되게 표현하고 바라봤겠지요.

일반 사람의 생각과 눈으로 

가우디의 예술 세계를 헤아릴 수 없었겠지요,

 

그 어찌 평범한 사람의 마음으로 신께로 드려지는 

가우디 믿음의 고백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평범에서 나오는 부족함의 표현이

어쩌면 가우디 작품의 천재성에 대한 부러움에서 일어난 시기였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가우디의 친구나 동료 그리고 가족이 남긴 기록이 있다는데

 

외부에서 바라본 가우디는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연과 민족을 사랑한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가진 으며

 비록 자신은 가정을 가질 수 없지만

그 대신 친구의 아들을 자기 아들처럼 여길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다고 합니다.

믿음의 사람 가우디는 살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자

 

일생을 바친 신이 보낸 건축가이며 

그러하기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건축의 형태를 만드는 마술사였다고 합니다.

 

 

 

 

43년 동안 온 힘을 기울여 성당을 건축하며 

가우디는 신께서 빨리 건축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다고 합니다.

요즘 건축 신속하게 지어집니다.

 

가우디의 성당건축은 일반적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의 귀한 예물이었니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 가우디는 건축하는 동안 내내

 작업장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규칙적인 생활하던 가우디가 하루에 한 번씩 거리를 나서는데

 이유는 고질적인 류머티즘으로 운동하기 위하여 산책했다고 합니다.

 

 

오후 5시 반이면 가우디는 같은 코스로 근처 교회까지 걸어갔다. 오는데

1926년 오후 5시 반 성당에서 나와 늘 하던 산책에 나서고

6시쯤 바이렌 거리에 도착 길을 건너기 위해 걸음을 멈추었고

이 거리는 붉은 십자가라고 하는 폭이 넓은 거리였다고 합니다.

 

 운명이 거기까지였는지 그만 전차에 치이게 되는 사고가 났다고 합니다.

당시 경찰의 보고서에 기록된 것은 가우디의 이름이 언급되어있었으나

 사람을 친 운전자도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잡았던 택시운전사도 

다 가우디를 부랑자라고 생각하여 

가우디를 병원으로 옮기는 일을 외면 해버려 

가우디는 사고 직후 오랫동안 거리에 방치되어야만 했다고 합니다.

참 슬픈 일입니다.

 

 

 

규칙적인 생활 하는 가우디가 돌아오지 않

그때 교회 관련 사제에게 알리게 되고 급기야 택시를 불러 주변 병원을 돌아다니며

 부상자나 사망자가 있는지 수소문하던 중 

자정이 다되어 중태에 빠진 가우디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우디는 성체 세례를 받을 것인지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고 합니다.

가우디는 주께로 돌아가야 함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매우 심한 중상으로 고통스러웠을 가우디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라는

작은 소리를 끝으로 신실한 가우디의 생이 마무리고 

74년의 일생을 마치고 그리스도께로 돌아갔습니다.

 

 

죽기 전 두 가지 유언을 남겼다는데

자신의 전 재산을 성가족성당에 기부한다는 것과 

장례행렬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소소한 장례를 원했지만. 가우디를 사랑하는 사람은

 바르셀로나를 울릴 만큼 성대하게 가우디의 마지막 장례를 치렀다고 합니다.

 

성가족성당 지하납골당에 묻힌 가우디

성직자가 아닌데도 진정한 수도자로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

 가우디는 그렇게 떠났고, 가우디의 성당 설계도면은 비록 사라졌으나

그의 정신은 살아있어 가우디 뒤를 이어

 믿음의 건축가들이 지금도 성당을 짓고 있어 

가우디 사후 100년이 되는 2026년에 완공을 목표로 짓고 있다고 합니다.

 

 

 

 

세상 살며 신의 특별함을 입지 않고는 자신을 버리고 살기 어렵습니다.

신의 은혜가 아니면 인간의 욕심을 버리기 불가능니다.

 

인생을 자신이 살아가며 결정하고 이루며 사는 것 같으나 

살아보니 뒤돌아보니 신의 은혜입니다.

 

신께서 걸어가라 하신길을 걸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남보다 조금 많다고 높다고 교만한 것도 부질없

남보다 못하다고 해서 불평할 것도 아님에도

 끊임없이 밀려드는 유혹을 벗어날 수 없는 연약한 심지를 가진 인간입니다. 

 

희망 없으므로 끝낼 인생,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희망 있으로 달려가다가

처음 왔던 그대로 두 손 펼친 채로 빈손으로 돌아가나 봅니다.

 

 

 

 

성당이 지어진 것 중에서 

가우디와는 다른 건축가가 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른쪽 어두운 부분이 건축물은 가우디가 만들었던 부분이고

왼쪽 밝은 부분은 현재 지어지는 부분이라고 합니다.

 

 

 

 

 

 

윙윙대는 기계음 소리가 끊이지 않고

복잡함 가운데 한편에서는 공사 중이라 금지된 곳도 잇고

 한편에서는 그런데도 개의치 않고

믿음의 선진들의 작은 고백으로 지어졌을 성당을 돌아봅니다

 

비록 타 종교인이라 할지라도 자신도 모르게 압당하듯 

경건함 가운데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발걸음이

 꼭 참회하는 마음으로 걸음을 떼어놓는 듯합니다.

많은 사람이 관람하게 되어 차례대로 줄을 서서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조급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믿음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자신의 믿음을 굳게 하는 기회로 삼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이 놀라운 장관을 보며 할 말을 잊었을지도 모릅니다.

 
     

 

위의 사진처럼 지어질 2026년 그때면 나는 70이 될 나이라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일이라

만일 다시 볼 수 없다 해도 아쉬움이 없을 것은 후일 완공된 이곳 성가족성당에서 

또 다른 많은 사람이 신의 은총을 느낄 수 있기에 그날을 기다립니다.

아름다운 에스파냐 

아디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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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시간이 지나 에스파냐 다녀온 지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나의 여행 기록을 미루다 숙제하듯 지난 시간 떠올려봅니다.

찌는 듯이 무더운 지금 날씨와 그때 바르셀로나 날씨를 비교하면

현재 우리나라 날씨가 더 덥고 습합니다.

 

그늘이 시원한 에스파냐는 유럽의 특징인지 자유로운 젊은이의 세상이기도 하지만

에스파냐인은 자신의 직업이 어떻든지 일에 매여 있다기보다는 일을 즐기듯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천재 건축가의 건축물이 세계인을 불러 모아 오늘도 많은 사람은 에스파냐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겠지요. 

 

 

버스는 굽이진 길을 돌아 그렇다고 산길은 아닙니다.

주택이 밀집한 곳을 돌고 돌아 언덕을 올라 도착한 곳,

그곳은 보는 사람마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곳입니다.

동화의 나라에서 봄 직한 건물이 있는 곳 구엘 공원에 도착했습니다.

 

 

 

 

가우디!

입구를 들어서니 여러 갈래 길이 있지만

구석구석 역사의 흔적이 지금도 숨 쉬는듯한 공원입니다.

카탈루냐 지방에 있는 바르셀로나는 

곧게 뻗어 있는 도로를 따라가면 지중해의 푸른 바다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백년대계를 바라보고 설계한 도로가 곧게 뻗어있고

 뿐만 아니라 에스파냐의 자랑인 천재건축가 가우디의 건축물이 곳곳에 있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지요,

 

 

그중 하나 

공원에 서면 멀리 보이는 지중해와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공원이 위치한 곳이 높다 보니 

버스가 힘들어하며 올라왔습니다.

여기저기 다녀도 우리나라 관광객이 많다지만, 

세계인이 찾는 공원입니다.

에스파냐 학생들이 현장학습 온 것 같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니 나이 60이 다 되는데도 

백설공주가 먼저 생각나는 곳입니다.

내 나이가 어때서 크크크

마음이 정말 동화 나라에 온 듯합니다.

어른을 어린이의 티없는 생각으로 만들 것 같습니다.

어린이에게 많은 꿈을 키울 것 같아 욕심납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답게 지어진 곳이 있었으면, 

 남의 나라이니 욕심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지만 

그래도 많이 욕심납니다.

 

 

 

 

걷고 걸어 공원입구에 들어서자 

동화 속 나라에나 있을듯한 예쁜 건물이 있어

창문을 열며 올라 하고 인사할 것 같습니다. 

인형이 사는 집, 백설공주의 집 같은 건물,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천재 건축가의 작품에 매료되어버립니다.

만지면 톡 하고 부서질 듯한 과자 나라에 온 듯한데.

가우디 특유의 건축양식인 모자이크를 형형색색의 타일로 만들어

꿈꾸게 하는 공원입니다.

 

 

 

 

입구에 들어서자 보이는 두 개의 건물.

하나는 경비실. 하나는 관리실로 쓰려고 지었던 건물이라는데

뾰족한 지붕이 신비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것 같습니다.

내부를 앙증스럽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쉽게 볼 수 없었습니다.

 

 

 

평소 그리스신화에 관심이 많은 구엘 백작의 요청으로 

신전을 연상케 하는 예술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해가 쏙 

신전건물 기둥의 특징은 도리스식,

*도리스식=(도리스 인들이 창시한 그리스 건축양식임)

*기둥이 굵고 주춧돌이 없고 기둥머리 장식이 간단하고 소박하나 

웅장한 느낌을 주는 건축양식, 

코린트의 아폴로 신전. 아테네의 파르테논신전. 

올림피아의 헤라 페르스 신전이 대표적인 건축물이라고 함,

*도리스인 = 고대 그리스를 지배하던 종족,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이 저 계단으로 내려올 것 같은 분위기,

생각의 날개가 돋게 하는 건축물입니다. 

요정이 뽀로롱 하고 나타날 것만 같고

신화 속 인물을 만날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합니다.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인공 석굴을 보는 순간

 왠지 불안한 느낌으로 바라보지만 감탄하게 되는 구조물입니다.

모든 건축물 하나하나에 가득 담긴 정성을 느끼게 됩니다.

 

 

 

 

꾸불꾸불한 길과 곡선으로 만들어진 구조물을 보면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는데

나이를 잊게 하는 공원입니다.

여기저기 돌들로 이루어진 놀라움의 장소입니다.

 

 

 

 

이 돌들만 봐도 이곳이 얼마만큼 돌이 많았는지 짐작이 됩니다.

하얀 머리카락이 멋진 현지 가이드님이

이곳이 돌이 많아 작업하기가 얼마나 어려웠겠느냐며 

여기서 캐낸 돌로 만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하나같이 모두 우-와 탄성 합니다.

버려진 땅이라고 할 만큼의 열악한 이곳을 이렇게 멋진 작품으로 만들고 

백 년이 넘어선 이 시대에 놀라움을 선사하고 있는 건축 구조물,

천재 건축가의 작품세계에 놀라고 재능에 감탄을 넘어

 신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형의 특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 만들어진 인공석굴은

어느 것 하나 단조로움을 느낄 수 없는 오묘한 작품입니다.야외 전시장인듯합니다.

아니 이 공원 전체가 전시장입니다.이 특혜를 누리는 바르셀로나 시민은

구엘 공원을 무척 아낀다고 하더군요.저라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신전처럼 지어진 곳

지붕에는 유럽의 특징인 넓은 광장이 있습니다.

광장 둘레는 벤치를 만들어 놓았는데 

이 벤치 하나하나와 둘레까지 형형색색의 타일로 모자이크하여

 화려한 가운데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오랜 세월의 풍상에도 변함없이 존재하고 있으나 전혀 볼품없어 보이지 않고

오히려 보는 사람이 앉고 싶어하는 마음과 앉았을 때의 편안함이 더해져

휴식의 최고의 장소임이 확실합니다.

 

 

 

 

단색으로 만든 구조물도 세심한 정성이 담겨 

 작품전시회에 온 듯 착각할 아름다운 솜씨를 뽐내고 있습니다.

보는 사람이 신비감을 일으키고 생각하도록 하는 듯

어떤 것은 반쯤 기울어져 위태롭기도 하고

 어떤 거는 과자나 초콜릿 같아 손으로 똑 떼면 떼어질 듯한

환상 속의 구조물입니다.

 

 

 

  바르셀로나 시내 외곽 언덕에 있는 공원은

구엘 백작의 경제적인 후원을 바탕으로 설계 건축되었다는데

처음 계획은 가장 이상적인 전원도시를 만들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평소 영국의 전원도시를 동경하던 구엘 백작은

가우디를 통해 60여 가구 이상의 영국풍의 아름다운 전원주택을 지어

 에스파냐 부유층에게 분양할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당시로는 새로운 발상이었지만 

실패할 수밖에 없는 부동산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이 공원의 땅은 돌이 많은 곳인 데다 

경사진 비탈길이 많아 작업하는데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하는데

그런데도 가우디는 자연스러움을 살리기 위해

 땅을 고르게 하는 것도 반대했다고 합니다.

 

 

 

 

1900~1914년까지 건축은 계속되었지만 

자금난이 겹치면서 몇 개의 건물과 광장. 유명 벤치를 남기고

 중단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만일 가우디와 구엘 백작의 뜻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어 분양되었다면 

과연 어떤 아름다운 전원주택이 지어졌을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미완성으로 중단된 공원이 

이렇게 아름답게 지어졌으니 말입니다.

1차 세계대전이 일난 시기여서인지 

자금난을 견디다 못해 중단된 구엘 공원을 

1922년 바르셀로나 시의회가 백작소유의 이 땅을 사게 되면서 

개인소유가 아닌 바르셀로나 시민의 공원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의 큰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 덕에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걸작품으로 기억하게 되고

 바르셀로나 시민의 휴식처가 되고 

이곳을 찾는 세계인의 꿈과 동심을 일깨워주는

 꿈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아차 하면 부유한 사람의 소유물로 남을뻔했는데

 많은 사람의 휴식처로 남게 되어 다행입니다.

 

 

 

 

가우디는 직선보다 주로 곡선으로 설계했으며

타일 장식 돌까지 모자이크기법을 적용 건축하여 화려함 가운데

보면 볼수록 시선을 사로잡는 묘한 마력이 있습니다.

딱히 예술에 대하여 문외한 일지라도 말입니다.

나선형의 구조물도 깨진 도기조각으로 장식했는데도

 오히려 화려해 보입니다.

 

 

 

성가족성당으로 가야야 할 시간이 되어

아쉬움을 남기고 시간에 쫓겨 돌아옵니다.

정말 아쉬운 것은 이곳에 가우디 박물관이 있다고 합니다.

과거 가우디가 살았었고 사용하던 침대 책상 등 가우디의 유품이 전시되고 있고 

직접 디자인한 독특한 가구들이 전시되고 있다는데

저는 핵심을 보지 않고 나오는 것 같습니다.

구엘 공원 가시는 분은 꼭 박물관에 가서 천재 건축가의 예술의 흔적을 

보고 느끼고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아름다운 에스파냐 구엘 공원 아디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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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눈감고 그려보면

끝없이 펼쳐진 대자연의 풍광이 생각을 압도하는 나라입니다.

에스파냐!

고요한 가운데 들리는듯한 대자연의 서사시를 들으며 지나온듯합니다.

갑자기 다가온 도시의 복잡함이 전혀 답답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동양문화가 아닌 유럽 새로움을 접하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이곳이 아시아권이라면 다른 마음이었을 거 같습니다.

살아가며 새로움이 있는 곳에서 알아가는 즐거움을 표현하자면 빈 주머니에 차곡차곡 담는다고 표현하고 싶군요.

생소한 부분이 많기에 신기한 것은 아니지만, 알아가는 즐거움이 참 좋습니다.

차창 밖으로 바라보는 바르셀로나,

지나가는 사람의 표정은 무언가 신나는 그런 표정입니다.

버스는 여행객을 카탈루냐 광장 이 바라보이는 한 장소에 내려주고 떠납니다.

 

 

 

 이곳 광장 주변에는 절대 차량을 오래 정차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모든 관광객을 내려놓고 버스는 다른 곳에 가서 있다가

정해진 시간에 태우러 온다고 합니다.

간단하게 한 바퀴 돌아서 올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정해진 코스로 돌아서 올 수 있는데 돌아오는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 광장에서

 일상의 행복과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이 광장 주변에는 백화점 쇼핑몰 레스토랑 등이 즐비하여

쇼핑의 즐거움을 느끼며 순간의 한가로움도 느낄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도 많지만, 비둘기도 가득한 이 광장은

주변을 둘러보려면 그래도 꽤 시간이 걸려야 합니다.

둘레도 한참 걸어야 하지만

여유로움 가운데 활기찬 모습이 좋았습니다. 

 

 

 

광장은 빠트릴 수 없는 휴식공간인 것 같습니다.

시원한 물줄기가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합니다.

메마른듯한 날씨 같은데 어디서나 잘 가꾸어진 분수가 있어 품어져 나오는 물줄기로 인해

마음에 시원함을 더해주는 것 같습니다.

유럽은 가족과 함께하는 생활이 몸에 배어있어 시간 날 때마다 가족과 함께

산책도 하고 자녀와 놀아주는 것을 즐긴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신세대 부모는 자녀와 시간을 많이 보내주는 것 같아  참 보기 좋습니다.

 

 

 

 

 

 

유럽 특유의 밝게 웃어주며 포즈를 취해주는 사람 숙녀분 고마워요.

김~치가 아니고 스마일 해줘서,

자유로운 나라답습니다.

많은 사람의 모습이 때로는 너무 자유분방한 듯하지만 절제된 자유로움이 있는 에스파냐 같기에,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저 젊음도 부러워집니다.

 

 

이층 버스가 지나갑니다.

여행객은 이 층에 앉아 투어를  한껏 즐기는 것 같습니다.

믿음직한 사람과 함께 하는 자유 여행이 젊음의 특권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용기가 부족해서일지 모른다고 생각을  한 편에 밀쳐놓았습니다.

시간일정이 짜여 있어 부러움을 바람과 함께 보내고 돌아섰습니다.

여기 느림의 미학 가운데 행복한 사람이 사는 나라입니다.

차량 통행이 잦으나 복잡하다고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듯하여

나도 모르게 미소로 바라봅니다.

바르셀로나는 이 거리로 직진하여 곧게 나아가면 아름다운 지중해의 푸른 바다를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곧게 뻗은 도로 또한 자랑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카탈루냐 광장 빙 둘러 위치한 건물 중 한군데입니다.

백화점 입구는 아니고 여행 안내소입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죽 내려오니 셀 수 없이 많은 팸플릿,

참 이곳에서 각종 티켓과 안내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나는 이용하지 않았지만 자유 여행가들은 매우 고마운 곳이 될 것 같았습니다.

 

에스파냐 여행 중 맛있게 먹었던 식사시간은  저는 매일 아침 호텔에서 먹게 된 음식입니다.

그중 제일 맛있었던 음식은 토스트와 과일입니다.

시시한가요?

여행 내내 토스트하고 과일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진심으로!

오랜만에 한식을 먹을 수 있는 음식점에 갔습니다.

오랜만에 고국 음식을 먹게 되니 함께한 분들의 얼굴도 갑자기 생기가 도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저는 해외 여행지에서 한식은 변형된 맛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맛있게 식사했지만 저는 토스트와 과일이 더욱 맛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독특한 입맛인지...

 

 

이곳을 중심으로 죽 돌아보니 온통 쇼핑 천국이라고 할 수 있군요.

식사후 골목을 빠져 나오다 우르르 상점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한컷 찰칵 돌아섰습니다.

딸과 함께 여행을 왔다면 딸이 좋아할 상품 천지인것 같습니다.

 

그동안 대부분 고요함을 즐기는 여행을 했는데 바르셀로나는 사람도 자동차도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차량정체도 있지만, 자동차는 클랙슨 마구 눌러대는 소리 나지 않습니다.

도로가 막혀 진행 속도가 느리거나 많이 지체된다 해도

조용히 여유 있는 기다림의 미학을 마음껏 즐기는 바르셀로나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앞차가 조금만 천천히 출발해도 빵빵거리거나 가차 없이 앞지르기하고

어떤 사람은 심한 말 하는 사람이 있는데 뭐지 이 복잡한 도시, 도로는?

참 좋았습니다.

이것 또한 진심 부러웠습니다.

느림의 미학을 즐기며 나도 이런 자연인의 마음을 많이 가지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 국가

모두 다 행복한 일이 많아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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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가 지나며 그 시대 사람 중

어떤 이는 하다 하다 국가까지 팔아먹었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와는 전혀 반대된

자신의 주검까지도 최후의 국가 승리를 위하여 바친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이순신 장군이 있는가 하면

그 외에도 많은 충신이 있지요.

 

일제 36년의 절망의 순간을 희망의 씨앗을 심어놓고 산화한

독립운동가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살아가고 여러 생각을 하며 저마다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분명한 건 인간이라는 대열에 있는데도

이렇게 상반된 가치관을 가지고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에스파냐에도

 이런 희생적 국가관을 가진 사람이 있더군요,

바로 엘시드라 불리는 장군이라고 합니다.

 

먼저 오페라 엘시드의 노래를 적어봅니다.

 

엘시드의 노래 ( 엘시드의 추방 중)

 

 1. 모두가 슬픔에 잠겨 울면서 보고 있습니다.

 

입에서는 모두 똑같은 탄식 소리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오 하느님 좋은 군주만 만났더라면

 

얼마나 훌륭한 신하인가요.

 

 

2부 엘시드 (딸들의 결혼 중에서) 제가 낳았으나 전하가 키우셨습니다.

 

제 여식이 전하의 수중에 있습니다.

 

도냐 엘비라와 도냐 솔을 전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전하가 좋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주옵소서

 

저는 그것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3부 코르페스의 모욕 도냐 엘비라, 도냐 솔 믿기지 않겠지만,

 

지금 너희는 험준한 산에서 모욕을 당할 것이다.

 

오늘로 우리는 떠나고 너희는 이곳에 버려진다.

 

 

간략한 이 내용으로 볼 때도 정말 슬픈 서사시입니다.

 

 스페인 민족 해방자 에스파냐의 희망 엘시드라는 인물을

 여행으로 인하여 알게 된 것은 큰 선물보다도 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쿡 티브이로 영화 엘시드도 보게 되었습니다.

 

역사 속 내용이 진실이건 예술작품으로 표현했든 간에

큰 선물인 명작 엘시드의 내용이

영화로 제작된 것이 실제와 많이 다르다 하여도

괜찮다고 여기며 보게 되었습니다.

 

발렌시아를 잊게 될지라도 절대 엘시드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저의 성향이랄까요.

놀라움입니다. 슬프고도 위대한 한 인물을 헤아려 생각합니다.

 

 엘시드

 

 영화의 내용은

 

 혼란스러웠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빠졌던 1080년대 에스파냐는 

예수님의 제자 사도 바울의 전도 지역으로 그리스도교가 전해지고 당시

 

국토 회복을 바라던 기독교도와 무어인의 전쟁의 연속이던

불행한 시대였다고 합니다.

 

722년 코바동굴에서 돈 펠라요가 이끄는 기독교 군대가

작은 전투에서 승리 하게 되고

 

이 승리가 불씨가 되어 

국토회복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전 에스파냐로 퍼지게 되었고 그때 

전해지는 역사 속의 인물인 로드리고 디아스라는 영웅이 등장하게 됩니다.

 

 

 당시 로드리고는 적개심을 버리고

평화를 원하는 사람으로 적을 물리치고 침략을 막고자 하지만,

 

북아프리카로 집결한 이슬람 왕은

 종교적 전쟁을 앞세워서 많은 사람을 전쟁으로 끌어내어

 무자비한 살육을 하게 됩니다.

 

이슬람 군주는 외칩니다.

 

모든 지식인은 지금까지 하던 일을 멈추라고 합니다. 

지금은 성스러운 전쟁을 하는 것이 알라의 뜻이니 

 이길 수 있도록 무기를 만들라고 선포하며

 닥치는 대로 죽이고 불사르도록 하라고 명령하며

 

곧 그것이 알라신의 뜻이고

 알라신의 힘으로 스페인을 무찌르고

 세계를 정복하자고 외치면서 잔혹함을 일삼았다고 합니다.

 

 

 

끔찍한 전쟁에서도 기독교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모든 지역을 불사른 무어인과의 전쟁에 의연히 일어선 사람이 있었으니 

로드리고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데 앞장섭니다.

당시 코바동굴의 작은 승리가 불씨가 되어

 

 국토를 회복하자는 운동이 기독교도에 의하여 전 국토로 퍼져 나가게 되었을 때

엘시드의 출연으로 많은 사람이 희망을 얻게 됩니다.

 

 

 당시 포로가 된 무어 왕은 자신이 죽으면 끔찍한 화가 있을 것이라 말하며

가는 곳마다 모든 지역을 불사르고 죽이는 잔학 무도 한자였습니다.

하지만 엘시드는 진정한 평화주의자였습니다.

 

성공적인 전투로 승리한 로드리고는

다시는 침략하지 않겠다는 답을 받아내고

사라고사 왕을 살려 주게 됩니다.

 

 

그 일로 로드리고는 반역자라는 누명을 입었으나

가톨릭 신부는 로드리고에게 진정한 신의 사도라고 말하며

엘시드라 칭하게 됩니다.

 

사라고사 왕을 살려준 사건으로 인하여

로드리고의 아버지가 죽임을 당하게 되고 

엘시드는 곤경에 빠지게 됩니다.

 

 당시 페르난도 왕은

 

 첫째 아들 산초와 둘째 아들 알폰소 셋째 우라가 공주를 자녀로 두었는데,

결국 로드리고는 사라고사 왕을 살려줌으로

사랑하는 연인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일로 인해

바로 잡아 주기를 원하여 그 연인의 집으로 갔으나

그 연인의 아버지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껴

 본의 아니게 그녀의 아버지를 죽이게 됩니다.

 

 

그 일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게 되고, 그때

같은 기독교 왕국 아라곤 왕국의 왕이

 페르난도 왕에게 싸움을 청하게 됩니다.

그러나 같은 기독교 국가인 점을 들어

 

국가의 대표격인 무장과의 결전으로 승패를 가르자는 제안에

엘시드가 나가기를 자청하게 됩니다. 

 

산초 왕자와 공주의 지지 아래 엘시드는

아라곤 무장과의 대결에 주요 지역을 놓고 결전을 치르게 됩니다

 

만일 자신이 이기게 되면

스페인법에 결투에서 가장이 죽으면 

 그 가족을 승리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예로 들어

시멘과의 결혼을 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왕에게 청합니다.

 

 

이에 페르난도 왕은 승낙하고

 엘시드는 신께 모든 것을 맡기고

아라곤 수석 무장과의 목숨을 건 싸움에서 승리하여

주요 지역을 사수하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페르난도 왕이 죽기 전

자신의 왕자와 공주에게 영토를 골고루 물려주었지만,

알폰소와 산초의 전쟁이 시작되어 엘시드는 왕의 첫째아들

산초를 왕으로 받들어 충성을 다합니다.

 

산초와 함께한 엘시드는 전투 중 산초가 후사 없이 죽게 되자

 알폰소가 산초를 이어 왕이 되어 엘시드는 배척을 당해

 추방당합니다.

 

 

엘시드가 길을 떠나기 전 마음을 열지 않던

아내 시멘은 엘시드와 함께 떠나겠다고 하며

 오해를 풀게 되고 사랑하던 때로 돌아가 함께 길을 떠납니다.

 

 

길 가던중 날이 저물어 엘시드는 한 농가에서 하룻밤을 묶게 되고

다음날 길을 떠나려는데 많은 사람이

엘시드를 따르겠노라며 자신들의 지도자가 되기를 간청하자

국가 회복운동에 기꺼이 그들과 함께하기로 합니다.

 

자신이 지도자의 길을 피했고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신께서는 사람마다 가야 할 길을 정해주시는 것 같지 않은가요.

결국, 엘시드는 여러 전투에서 타고난 능력으로 승리를 거두고

 승전보를 왕에게 전했습니다.

 

또한, 국토 회복에 함께 승리를 도와줄 다른 지역의 왕들과 함께

발렌시아를 정복해야 됨을 

스페인 왕에게 자세히 권고하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함께 온 왕들에게도 무례하게 대하게 되자 

모두다. 알폰소 왕에게서 떠나버리게 됩니다.

 

 

그 사이 딸이 태어나고 아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 엘시드는

 독자적으로 발렌시아를 되찾아 왕관을 알폰소 국왕에게 바치며

 알폰소 왕에게 지원군을 요청하지만, 냉정히 거절당하게 됩니다.

 

당시에 알폰소 국왕은 사라고사의 잔혹한 왕과의 결전에서 패전하여

군사적 지략가요 능력자인 엘시드를 간절히 원하게 됩니다.

 

알폰소 국왕은

 엘시드의 아내와 딸을 볼모로 잡고 엘시드를 압박하기에 이릅니다,

엘시드는 아내와 딸을 구출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나

그의 아내는 엘시드에게 방해되지 않으려고 스스로 탈출합니다

 

 

한 시대를 살아갈 때 영웅을 견제하는 자는 물론 많이 있게 되지만, 

왕 또한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을 한편으로는 이해도 됩니다

 

 자신보다 뛰어난 엘시드,

 

백성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서

왕은 자신의 권력에 위태함을 느끼게 됩니다.

 

아내와 딸이 탈출해서 돌아오지만 

전쟁에서 엘시드는 결국 중상을 입어 죽음에 이릅니다.

 

엘시드가 죽음에 이르기 전

알폰소 왕의 뉘우침으로 왕을 용서하게 됩니다. 

 

발렌시아 전투를 함께하기로 약속한 엘시드는 그날 밤 죽게 되고

 죽기 전 자신의 주검을 말 위에 앉혀

선봉에 세울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숨을 거둡니다.

눈물겹게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에 눈시울이 젖게 되는 순간입니다.'

 

 

다음날 전장에서 엘시드의 주검은 말 위에 늠름히 앉아

종횡무진으로 아군의 사기를 높이고 적군의 사기를 저하시켜 

끝내 승리를 이루게 됩니다.

엘시드는 영원한 에스파냐의 영웅입니다.

 

 영화 줄거리 끝입니다.

 

 에스파냐 영웅 엘시드에 대하여 알게 된 부분입니다.

 

간단한 몇 줄 안 되는 내용이지만

이 내용으로 인해 영화도 보게 되었습니다.

조만간 에스파냐 문학을 즐겨 탐독할 것 같습니다.

 

 

시대적 중요 사건 중 주역들의 평가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여러모로 평가되는 것 같습니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지난날을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우리나라의 역사 중에도 왕보다 뛰어난 신하나 장수는

왕의 견제를 받았던 거 같습니다.

 

백성의 지지를 한몸에 받아서도 안 되는 것,

오직 임금만을 드높여야 하기에

어쩌면 왕이나 신하나 모두다. 인간이기에

그럴지도 모르지요,

 

 

위대한 그리스도교의 장수 엘시드의 출신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르게 폄하되었다고 합니다.

 

엘시드는 외가 쪽이 부유하여 왕궁에서 왕자와

함께 자랐다고도 합니다.

 

지난 역사에 대하여 분분하지만

먼 나라 에스파냐의 영웅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엘시드의 뜻은 투사라고 합니다.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

출생 1043년 카스티야 부르고스 근처 비 바르

1099년 7월 10일 발렌시아 중세

카스티야 왕궁의 군사 지도자 민족영웅

로드리고 디아스의 아버지 디에고 라이네스는

카스티야의 소 귀족이었다고 합니다.

 

엘시드의 사회적 배경은 보잘것없는 것으로 전하여진 것과는 다르게

엘시드는 유복하게 자랐다고 합니다.

외가의 넓은 땅을 가진 귀족 집안으로

엘시드는 페르난도 1세의 궁전에서

후일 카스티야 왕으로 오른 산초 2세 왕자와 함께 자랐다고 하는군요.

 

 

시간이 흘러 왕위에 오르게 된 산초 2세는

22살의 엘시드를 국왕 군 지휘관으로 임명했다고 합니다.

 

스물두 살의 나이로 중요한 요직에 오른 엘시드는

이때부터 자신의 뛰어난 군사적 능력을 펼치게 되어

큰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1067년 엘시드는 산초 왕과 함께 이슬람 군사요충지 사라고사 왕국 원정을 떠나가

사라고사 왕국과의 협상을 주도하여 카스티야의 속국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산초왕 의 아버지 페르난도 1세는 죽을 때

여러 자식에게 왕국을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둘째 알폰소 6세에게는 레온 을 물려주었는데

산초 2세는 레온을 합병하기 위하여

알폰소 6세와

전쟁을 시작하여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전쟁에서 당연히 뛰어난 역할을 하게 된 엘시드,

세월이 지나 산초 2세는 후사가 없이

1072년 사모라 공격을 하다 목숨을 잃고

알폰소 6세가 카스티야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답니다.

 

알폰소 6세가 왕위를 계승하자

엘시드는 국왕 지휘관의 지위를 가르시아 오르도녜스에게 빼앗기게 되어

궁정에 계속 남아있지 못하고

알폰소 6세의 권유로 왕의 조카딸

히메나 와 결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영웅적 삶은 이어져 갔으나 오를 때가 있으면

내려올 때도 있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듯이

 

 

발렌시아를 되찾은 엘시드는 실질적인 통치자가 되고

 발렌시아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은 가톨릭교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엘시드는 1남 2녀를 슬하에 두어 아들은 전투에서 죽었고

 큰딸은 아라곤 왕자와 결혼하고 둘째 딸은 바르셀로나 백작과 결혼시키며

아내와 3년여 동안 행복하게 살았으나

무라 비트 이슬람 왕조가 다시 쳐들어와

전투 도중 심장에 화살을 맞고 전사했다고 합니다.

 

엘시드의 전사로 사기를 잃게 된 발렌시아 군은 결국 패배하여

발렌시아는 125년 동안 이슬람 도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엘시드의 아내는 남편의 시신과 함께 부르고스로 도피하게 되었고

그곳에 묻히게 되므로 시대의 영웅 엘시드는 과거의 사람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시간은 끝없이 흘러갑니다.

 

과거의 상흔을 찾아볼 수 없지만, 그 역사의 현장을 딛고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고 내일을 또 누군가 살아갑니다. ---

 

 

 

 끝없는 유혹과 견제 그리고 모함 인간의 욕망

 

어쩌면 인간 세상이기에 반복되는

인간의 심성과 삶의 어두운 면일 거라고 생각도 합니다.

 

남의 나라 오래전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세월이 흐르는 가운데 가감한 부분도 있겠으나

 

 과거의 이러한 일이 현대를 살아가는 상황 가운데도

일어났고 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여깁니다.

 

온전한 평가는 세월이 흐른 뒤 잊혀 갈 무렵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진정한 평가가 이루어지겠지요,

 

마음 아릿한 충성스런 에스파냐의 영웅 이야기입니다.

성웅 이순신 장군과 많은 충신과 많은 독립운동가

 

 그리고 순국선열들의 피와 땀과 혼을 다해 바치고

 지키고 일구어낸 우리 모두의 조국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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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버스는 한산한 지역을 지나

빌딩과 차량이 많아지는 곳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바르셀로나 시내에 진입했다고 하는

가이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붐비는 인파와 오토바이 자동차 빌딩과 건물이 가득한 

오랜만의 도시의 복잡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는 어디지? 그것도 잊어버렸습니다.

경기장인듯하고 아닌가 아휴 내 정신이야 그렇게 잊어버렸습니다.

할 수 없이 모를 때는 다시 역사 속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지요.

 

궁금하신 분은 바르셀로나 가셔서 알아보셔요~~~

 

 카탈류냐 미술관 전경

 

 

  우리나라도 과거 오래전부터

삼국으로 나뉘었다. 통일이 되었다. 더 작은 소국으로 된 적도 있고

우여곡절이 많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완전 100%의 융합은 아직 안 된 2% 부족합니다.

 

 지역마다 특색과 자존심을 가지고 사는 것이

현재의 세상을 살아가는것 인지도 모릅니다.

 

 

 

 스페인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복잡한 역사를 가졌다고 합니다.

 

이곳의 로마 지배 시절의 옛 이름은 히스파니아라고 하는데

히스파니아는 로마제국 일부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히스파니아는 로마제국의 중요한 부분으로 성장했었다고 합니다.

 

중세 초반에는 게르만 족의 지배를 받았었고

그 시대 이후에는 이슬람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독교신앙으로 무장한 기독교 군사의 오랜 투쟁과 국토회복운동 결과로

전쟁 끝에 드디어 1492년에 기독교 왕국이

 주먹 모양의 이베리아 반도에 세워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 후 절대적인 왕을 중심으로 한 정치와

식민지 개척을 추진하여 얻어진 금은보화 여러 물품으로

가장 강력한 대국으로 성장 자리 잡게 된 무적 대국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쟁과 내분으로

해지지 않는 에스파냐 대국이란 명성은 오래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국가 간의 전쟁도 그렇지만 내분으로 인한 국가의 황폐함은

진정 마음아픈 일이지요.

후회와 회한만 남는 국가의 재앙입니다.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하고 에스파냐는 20세기 초반에서 중반까지

프란시스코 독재정권 아래에서 가장 부강했던 나라

해지지 않는 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여곡절을 겪은 자존심이 강한 에스파냐는 드디어 1975년 독재 정권의 막을 내리게 되고

에스파냐는 유럽을 넘어 전 세계를 주름잡던 기백을 살려

고도의 경제발전과 사회적으로도 안정을 이루게 되어 1986년 유럽연합에 가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선사시대 이베리아 반도는 약 3만5천 년 전에 피레네 산맥을 넘어

현재의 이베리아반도로 크로마뇽인과 비슷한 인류가

 진출하게 되어 거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증거로 북부지방의 알타미라 동굴에는

선사시대 유적으로 매우 유명한 벽화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기원 1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벽화도 존재할 뿐 아니라

 아타 푸에르카 지방에서 발견된 새로운 유적지에서는 오래전

백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 지역에 살았던 이베리아족과 켈트족은 지중해 쪽과 남서쪽에 모여 살게 되었고

이후 대서양 쪽으로도 옮겨 거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코임브라와 브라카와 세고비아에는

 지금도 켈트족의 고대도시의 흔적들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이베리아족은 그들이 사용하던 언어를

이베리아 반도의 에브로 라고 긴 강의 이름으로 남겼다고 합니다.

이베리아족의 후손 중 한 갈래인 바스크족은

피레네 서부를 점령하여 살았다고 하는데

바스크족의 특별한 언어와 풍습은 지금도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원전 300~500년 사이에 페니키아인이 거주하게 되고

  그리스인도 당시 지중해연안에 교역중심인 식민도시를 건설하여

활발한 교역을 펼쳤다고 합니다.

그중에 현대까지 남아있는 도시로

 엠프리아. 마라가.아리칸테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페니키아인이 세운 도시로는 카르테지가 남아있다고 하는데

페니키아인은 로마제국에 정복당하게 되는데

로마와 대적한 그 유명한 한니발의 아버지 하밀카르 바르카가 세운

카르테 헤나가 현재까지 도시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의 이름은 당시 도시 중 하나인 바르키노에 남았는데

바로 이 이름에서 바르셀로나가 유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복잡한 이 나라의 역사 당시에는 아하 그랬구나! 이해한 듯 대답했지만,

한참을 복습해야 하는 먼 나라 남의 나라 역사입니다.

육십오기 전에 어느 정도는 반복 학습하고

이 계기를 통해 에스파냐 문학도 탐독하고 싶어지는

도전의 마음이 새록새록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내 취향의 눈이 번쩍 뜨이는 에스파냐 문학입니다. 두어 개라도 알고 가려 합니다.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 사는 곳 바르셀로나입니다.

 카탈루냐 시민은 카탈루냐 나라로의 독립을 원하여

아래 아파트에 국기 보이시죠

저렇게 국기를 내걸어 놓는다고 합니다.

 

 

 

 에스파냐인으로 불리기보다는

카탈루냐왕국 국민으로 불리기 원하는 열망이 가득하다고 합니다만,

그 염원 때문에 이곳뿐 아니라

다른 지역 바르셀로나지역은 가는 곳마다 띄엄띄엄

옛 카탈루냐 왕국의 문장과 국기를 걸어놓은 곳이 여러 곳이 눈에 띄게 됩니다.

 

 그러나 정치적 기득권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살짝 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지만,

태극기나 애국가를 듣거나 볼 때

눈물이 핑그르르 도는 나의 마음도 그러한데 그건 당연한 자부심입니다.

 

 

 

 버스로 지나가며 바라본

아름다운 건축물에 압도되며 여행을 했는데

나도 우리나라 옛것에 관심 좀 가지며 살아야겠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예술의 도시 에스파냐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미술관입니다.

 

카탈루냐 왕국의 후손임을 자랑스러워하며 

옛 영광을 그리워하고 자부심을 느끼고 사랑하기에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절대 분열이 아닌 자부심의 표현으로

능히 그럴 수 있다고 여깁니다.

 

 

 

 버스가 도심 진입하니 정말 독특한 건물이 나타났습니다.

 

이 도심에 예술은 몰라도 아름답게 우뚝 서 있는 건물에 함께한 일행도 감탄사를 보냅니다.

이 건물이 성 가족성당을 최초 설계한 천재건축가 가우디 작품이라고 합니다.

 

 

 

 

 

 

 천재 건축가의 작품을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인체의 내부를 모델화 하여 설계를 했다고 합니다.

 

 

 

 버스는 시내를 돌아 바르셀로나 중심 백화점이 있는 광장을 빙 둘러

쇼핑 천국이라고 할 정도의

 번화한 거리에 우리 일행을 내려주었습니다.

 

 

 

 람블라스거리 산호셉시장 여기저기 빙 둘러봤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지나갔습니다.

어떤 분은 여행이 취미라고 하는데

동생이나 친구와 함께 오는 것이 즐겁겠다는 생각도 하며 살짝 부러운 생각이 들었답니다.

 

 

 

 세상 어디 자기 마음대로만 할 수는 없으니까,

 젊은 사람은 제외하고 남편과 함께 온 나는 생각하기를...

마음만은 낭만 소녀로 거리를 이 나라를 문화를

돌아보는 것도 자유로움을 즐기는 여행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다를 사랑하며 자유를 꿈꾸는 나를 생각하는 시간, 저 방황하는 엄마 아닙니다.

단지 나를 생각해보자는 느낌이 

에스파냐 마지막 여행지에서 들게 되었습니다.

아디오스

 

에스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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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호흡기질환

어떤 사람은 가볍게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심각하게 여기고

저는 심각하게 여기는 쪽입니다.

자기 뜻대로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지나간다면 좋으련만

격리 대상자가 늘고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가 많아지고 있다는

보도를 접할 때마다 염려되며 속히 이 메르스 전염공포가

바람 가듯이 하루빨리 지나갔으면 합니다.

 

 

 

 

 2014년 6월 15일

파란 하늘을 바라보니 왠지 마음이 넓어지는것 같습니다.

착각,

녹색의 들판이나 산하를 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콧노래가 절로 납니다.

오늘은 바르셀로나 경기장에 왔습니다.

1992년 올림픽을 개최한 이 장소는 지대가 높은 곳에 있어 탁 트인 시가지를 바라보면

그 많던 차량과 인파가 생각나지 않는 듯합니다.

매우 잘 다듬어진 바르셀로나입니다.

바르셀로나 경기장을 관람하러 왔습니다. 

 

 

 

 

 예술과 문화의 도시 스페인

과거에 세계를 쩌렁쩌렁 호령하던 에스파냐!!!

지구의 4억 5천여만 명이 에스파냐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막강한 힘을 가졌던 에스파냐임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지구촌 한가족!

 세계 많은 사람이 드나들고 있는 에스파냐 바르셀로나입니다.

16세기 가히 최강의 국가였던 나라 ,바르셀로나에서 1992년 올림픽을 개최했었지요.

 

 

 

 올림픽 주 경기장을 둘러보는데 높은 곳에 있어서인지, 쭉쭉 뻗은 도로가 좋습니다.

도로를 쭉 가다 보면 지중해가 나온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는 그 이유로

더욱 새로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관람 후 돌아 나오는데

 길에 죽 늘어선 어린 학생의 대열이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견학 온 것 같았어요.

자유로움 가운데서 학습하는 것은 보기 좋았습니다.

급식비와 교육비가 무료인 점이 부럽긴 하지만

앞으로 우리나라도 그렇게 되겠지요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 나이가 들다 보니

 부모보다 더 소중한 국가관을 가지게 됩니다.

나의 조국 자유 대한민국의 황영조 선수가

바로 이곳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당당히 ( 마라톤 )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그 감격의 나라입니다.

바르셀로나와 경기도가 공동으로 세웠다고 하는데

이곳에 기념 석을 세우기 위하여 

실제 수고하신 분이 있으시겠지요.

그분께도=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곳에 오랫동안 살고 계신 분이지 않을까요?

경기도라고 하지만

몸소 나서서 열심히 이 일을 이루기 위해 실질적으로 수고하신

현지 교포분께 감사드립니다.

 

 

 

 역사와 예술의 나라 스페인

찬란한 고도 바르셀로나 이곳에

동방의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 경기도

그 힘찬 빛이 같이 어리어 있다네

아, 이 뜨거운 우정 만방에 영원하여라

 

 

 

 

 달리고 있는 바르셀로나 마라톤 올림픽 영웅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달리던

 황영조 선수를 떠올리게 되더군요.

여기 태극기가 새겨져 있는데

 마음은 저기 세워진 돌에 태극기를 새겨넣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여 여행객의 노곤함 때문에

잠시 걸터앉는 곳이 될까 봐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사람은 그렇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많은 수고와 노력과 정성 끝에 이곳 바르셀로나에 대한민국의 흔적을 새기도록 해주신 분께 감사드리며

그날 감격의 함성이 들릴듯한 이곳 몬주익 언덕을 내려왔습니다.

아디오스

 

에스파냐

 

 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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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각 나라는 저마다의 문화와 풍습이 있지요.

당 시대를 살아갈 때는 문화의 소중함을 모르고 지나치기 쉬울지 모릅니다.

새로운 것을 접하게 되면

왠지 모를 강력한 끌림이 있어 자신도 모르게 새로움에 빨려 들어가는 듯합니다.

딱히 도드라질만한 점이 없다 해도

새롭다는 점에서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흐르고 흘러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기 예술과 문화의 나라, 도시 국민답게

문화적 가치보존에 대하여 많은 불편함이 있어도

기꺼이 감수하는 국민성이 뛰어나지 않나 라는 생각마저 하게 됩니다.

 

대가 없이 후손을 위하여

불편함을 감수하며 보존하는 그 마음에 박수를 쳐 드립니다.

왜 =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독특한 문양의 식기가 많이 전시 판매되고 있는데

오랜 역사 속에 이슬람. 기독교 가톨릭 시대를 거쳐 가며

전해 내려오는 예술적 가치가 손상되지 않고

 장인의 혼이 담겨 빚어낸 결과물이 많은 사람의 발걸음과 

여행했던 시간이 일 년이 지났음에도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오래전 그 시대로 마음이 달려가는 듯합니다.

 

올레~~~

 

 

 

 기하학적인 문양의 식기를 비롯하여

특히 칼 종류가 많이 전시 판매되고 있는데

그 긴긴 세월 동안 숙적 이슬람을 몰아낸 승리를

 기념 기억하기 위한 부분도 있을지 모르겠다는

 나 혼자만의 생각도 해본답니다.

아깝다. 칼 한 자루 사 왔어야 했는데 큰 아쉬움입니다.

혹여 훗날 다시 가게 된다면 하나 소장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여기까지 기념품 상점은

톨레도 산토토메 교회 앞 기념품 판매장입니다.

 

 

 

이곳은 포르투갈 가는 길에 들렀던 휴게소에 있는 기념품 상점입니다.

이곳에서 맛있는 점심도 먹었는데, 식사 후 둘러본 이곳도 칼 천지입니다.

 

 

 

 이곳은 돈 조반니의 집 입구에 있는 기념품 판매장입니다.

돈 조반니의 집은

지금은 여행가들을 맞는 숙소로 이용된다고 하니 세비야를 가시는 분은

돈 조반니 집에서 머무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뜨거운 태양을 막아줄 모자를 저도 이곳에서 구매했습니다.

준비해간 모자로는 불편한 부분이 있어 사게 되었는데 어울리거나 안 어울리거나 마음에 꼭 드는 모자였습니다.

한화 오천 원에 샀어요.

맨 아래쪽 핑크와 같은 모양의 저는 하늘색입니다.

당시에는 모르고 지나쳤는데

지금 생각하니 여행에 많이 미숙하여 놓친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곳은 론다 투우장에 있는 기념품 판매장인 것 같습니다.

동물에 대하여 별생각 없이 대하며 살았는데

딸과 함께 사는 강아지로 인하여 동물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관광 지역에는 기념품 판매소가 있지만

물건을 사라고 강요하지 않는 점이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도록 합니다.

궁금하여 물으면 말이 통하지 않음에도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려 전달하려고 애쓰는 그 점이 더욱 좋았습니다.

물건 하나 팔면 그만이라기보다

관광객에게 그 기념품에 담긴 의미를 알게 하려 애쓰는

 그 얼굴에는 자신의 직업을 즐기며 살아가는 모습도 느끼게 했습니다.

 

 

 

 

 

누에보다리 지역입니다

이곳의 기념품 판매장은 골동품과 비슷한 물건들로 전시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떠올리게 하는 종이 많이 있습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 스쳐 간 많은 순간이

지금도 바람을 타고 기억해달라는 듯한 느낌의 누에보다리였습니다.

 

 

 

 예술적인 소양이 풍부했다면 이 아름다운 많은 기념품을 통해서도

헤아릴 수 없는 이야기를 알게 될 텐데 듣고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려

 다 기억하지못한것을 애석해 하며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나의 자녀가 젊음의 때에 두루두루 세상구경도 하고 마음의 양식도 차곡차곡 채워가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세상을 살아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게 됩니다.

오늘을 감사하며 이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게 되었으니 행운입니다.

내일의 부분은 내 자녀와 모든 청년을 통하여

국가의 이익이 될 다양한 양식이 가득히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국방 정치 경제 문화가 아름답게 성장하고 잘 다져지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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