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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조트 내 마트보다 

훨씬 저렴한 조텐 마트이용하세요.

빠르게 변하는 문명 덕으로

 4시간 비행에 훌^^^ 쩍

서태평양에 한가운데 있는 아름다운 산호섬에 도착

자연을 즐기고 있습니다.

과학의 놀라운 변화는 끝없이 나아가겠지만,

처음 그대로의 자연경관이 보존되는 것도 

소홀히 넘길 수 없는 부분이겠지요.

대자연의 섭리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감동하며

창조주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카노아 리조트 길 건너 좌측으로 가면 조텐 마트가 있습니다.

대략 2분 거리 가까운 곳에 있는 이 마트는 

우리나라 이마트처럼 모든 것이 갖춰 있어 편리함을 더해줍니다.

여행지에서 마트 이용하기 귀찮을지 모르지만 

조텐마트는 가깝고 가격도 면세에 저렴하니

구경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세계 여러 나라 제품이 가득하지만,

 

 

 

좌측은  카노아 리조트 

그 뒤로 조금 보이는 곳은 월드 리조트

오른쪽 빨간 지붕이 바로 조텐 마트 정문입니다.

 

 

 

우리나라 코스트코에 가면 거기에서도 판매하는 건데

여기 온 김에 조금 아주 조금

군것질거리 겸해서 샀습니다.

초콜릿은 사이판이라 쓰인 것으로 여러 개 샀습니다.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보라색 옥수수로 만든 칩이 어찌나 고소한지 

바다를 보며 먹는 맛 참 좋습니다.

짜거나 달지 않아 내 입 맛에 딱 맞는 과자입니다

코스트코 가서 큰--거로 한 봉지 사 먹어야겠어요,

정말 맛은 좋은데 생각보다는 비싼 과자입니다.

(면세라며 비싸네=그런데 맛이 왜 이리 좋은지)

 

 

 

 

 

 

 

 

아쿠아 슈즈 값이 저렴합니다.

의류 판매장도 넓은데 사진을 찍지 못했네요.

 

 

카노아 리조트 정문 앞에 한식당이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조금 가면 KFC도 있다고 합니다.

 

 

둥근 달이 가깝게 떠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바라본 것과 다르게 

가까이 느끼는 건 왜인지 모르지만,

아주 조금 진짜 조금 우리나라보다 사이판이 

달하고 가깝나? 라고 생각 하는 순간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정말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크크크

 

 

화려한 네온사인 흥청거림이 없어 더 좋은 이 순간 

사이판은 어학연수 온 학생도 많다고 합니다.

그만큼 치안도 안전하고 아이들 탈선할만한 곳도 없어

안심하고 이곳으로 유학 보내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사이판 원주민의 종교는 가톨릭으로 독실한 신자이고 

유순한 성품으로 교육적인 면에서 적합한 곳이라고 

현지 사는 가이드분이 말해주더군요.

그러나 장담할 수 없는 세상사, 

청소년의 조기유학은 얻는 것과 또 잃는 것이 있는

정답 없는 교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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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손으로 만든 아름다운 것 많지만,

말로 표현하기 부족한 최고의 작품은 

역시 신의 창조인 것 같습니다.

하늘과 맞닿은듯한 아름다운 바다와 

옥색 물감 풀어놓은 듯한 바다를 보니

참 아름답다는 말로 표현하기 많이 부족하여 

신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이곳

 여기는 사이판 바다입니다.

 

 

 

 

이른 아침 창문 너머로 바라보이는 신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풍광에 

벅차오르는 감격으로 심호흡하며 바라보노라니 

해변을 거니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자고 일어난 그대로 나도 모르게 후다닥 카메라를 들고 부리나케

바닷가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중년 여인 셋이서 여행 온듯합니다.

아름다운 풍광이 주인공이지만, 이 여인이 연출하는 자태는 

진정 이 아름다운 바닷가의 한 폭의 그림이라 해도 좋을듯하여

사진을 찍게 되었습니다.

물론 꽃다운 청춘의 사람이 제 일이라고 하지만,

중년 여인의 모습은 사랑스럽습니다.

 
 

 


그래서 청하여 사진을 찍게 되었습니다.

순수함을 잃어버린 영혼에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모습

그 주인공은 나와 같은 대한민국 국민은 아니고 

중국에서 여행 온 사람이었습니다.

얼굴은 나이 들어 주름진 모습 지워지지 않지만,

사이판 해변이 이 여인을 아름다운 한 부분으로 돋보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대자연이여!

 

 

 

 

지치고 지쳐 곤고하여 찾아온 사람에게 

마음 깊은 곳부터 치유를 안겨주고,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사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감탄하신

 창조주의 마음을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알게 하려 하신 

창조주의 사랑인듯합니다.

 

 

 

 

 가장 미약하고 작은 티끌 같은 존재가 

사이판의 아름다운 이 바다를 보며 

인류를 사랑하사 많은 것 허락하신 신께 

감사의 마음 표할 길 없어 작은 마음으로 이 순간 고백하기를 

온 천지의 주인 되신 분을 사랑합니다

 라고 되뇌고 있습니다.

이순간 사이판에서

사이판 바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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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새로움의 유혹 

 인간의 삶과 마음도 타락의 길로 빠져감을 안타까워하던 그때, 

마음과 삶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신의 집뿐이라는 어느 출판업자의 믿음에 찬 확신에서

 1866년에 처음 계획되었다고 합니다.

 

 가족이 모여서 기도할 수 있는 곳으로 계획한 곳

 성가족 성당건축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성당의 중심점 또한 주인 되시는 하나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중심이며 육신의 가족 마리아와 요셉을 일컬어

 

 성 가족이라 이름한 성당이라고 합니다.

 

 

 

 

 

이 내용은 성서에 나오는 주기도문 중 한 부분의 기도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옵소서 쓰인 한글도 보입니다.

 

이 단어는 주기도문에 나오는 기도인데 인간에게 꼭 필요한 기도입니다.

 한 번에 많은 양식을 주옵소서 가 아닌 일용한 양식을 기도하는 문구에서

 

인간이 사는 동안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단번에 그치지 않고 

 

 순간마다 필요함을 말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세계 모든 나라 언어로 쓰인 기도문이 지금은 동판이 아니지만 

후일 동판으로 새겨질 거라고 합니다.

 

 

 

 

 

 

1,492개의 파이프 오르간과 고난의 예수님,

성당 중앙 예배당에는 1,492개의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고난의 예수그리스도를 보면서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공평하신 하나님은 인간 앞에 어두운 덫을 놓지 않고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비록 마음으로만 생각으로만 안다 해도  그 부분은 감히 사람이 평가할 수 없는 신과의 일대일의 관계라서
뭐라 불필요한 논쟁할 필요가 없는 사랑입니다.
타인을 비난하기보다 자신의 믿음을 지키며 타인이 손을 내밀어 청할 때 잡아주는 신자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유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켰노라 장담할 수 없는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52개의 기둥은 나무 모양으로 

 

숲을 표현하는 천장을 받쳐주고 있다는데

 

여러 기둥 중 (아랫줄 작은 사진) 붉은색 기둥

 

 중간에 있는 원형 그림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을 상징하는 

 

사자. 사람. 황소. 독수리의 그림이라고 합니다. 

 

 

 

 

 

 

 

신비함을 느끼게 하는 성당 내부 구조물은

 

 아침부터 저녁 또는 흐린 날에도  

 

각색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빛이 들어오는 각도에 따라 스테인드글라스에 반사되어 가지각색으로 비쳐

 

 보는 이 마음을 잔잔한 예술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비록 전문 지식의 부재로 구조물의 담겨진 뜻과 의미를 모른다 해도 

 

인간의 본성대로 느끼는 감동은 환상적인 부분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가우디의 죽음은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 생각해도 안타까운 죽음입니다.

산책하던 중 전차 사고로 중태에 빠졌지만 

부랑자로 오해하여 가까스로 극빈자를 위한 구호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나중 가우디를 찾아낸 친구는 다른 병원으로 옮기려 하나 

가우디는 나는 여기 가난한 사람과 함께 있겠다고 하며

 친구의 제의를 거절했고 

사흘 후 가우디는 숨을 거두고

 사랑하는 예수님께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성경에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듯이 

가우디가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교회는 

가장 성스럽고 아름다운 교회에 많은 사람의 기도가 끊이지 않는 

그런 교회를 지어 하나님께 드리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곳을 설계한 가우디의 정신세계는 감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가우디는 성당 앞면에 세워질 작품을 준비하면서 

시체에 석고를 발라 본을 뜨거나

병원을 자주 들러 죽은 환자가 있지 않나 확인하러 다녔고

인체 구석구석의 변화와 관찰을 했기에 비난도 받았겠지요.

어린아이 시체에서 석고 본을 떠놓은 것을 작업실 천장에 보관하여

영안실 분위기가 나는 작업실이었다고 합니다.

 

 

 

 

 

 

또 닭과 칠면조를 마취시켜 마취가 풀리기 전 신속히 본을 뜨기도 했고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인체에 대해 많이 알아야 했으니

정상이 아니라는 오해도 비난과 함께 받았을 거라 여깁니다.

근육분석을 위해 무덤까지 팠다고 하는 가우디

 

 성가족성당이 인간의 겉과 내부장기 혈관 등 

 

그 이상을 모델화하여 만들어졌다 해도

 

가우디의 신앙과 관련하여 생각건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존재임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는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가우디가 죽고 난 후 미완성인 성당을 놓고 논쟁이 일었다고 합니다.

 

미완성인 성당을 계속해서 지을 것인가 

 

아니면 모차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처럼 미완인 상태로 둘 것인가를 놓고

 

불꽃 튀는 논쟁 끝에 현재도 지어지고 있는 성당은

 

 과거에는 모금한 헌금으로 지었지만,

 

지금은 성당을 찾는 관광수입으로 지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기도 응답의 기둥이라고 합니다.

 

가시면 꼭 손을 얹고 눈 감고

 

 마음 깊은 곳에서 원하는 기도를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응답의 기둥이라고 합니다.

 

 많은 성도가 손을 얹고 기도했을 때 

 

개인의 소원보다 더 큰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믿음의 기도가

 

 더 많았을 것 같기에 꼭 손을 얹고 기도하고 돌아오세요.

 

 

 

 

 

 

성당 평면도라고 합니다.

 

세밀하게 모른다 해도 보는 순간 사람의 형상과 같습니다.

 

예수님 희생과 십자가가 생각나는 평면도입니다.

 

 

단체로 온 여행이라 시간 제한적인 면도 있어 아쉬움이 많습니다.

지하성당도 입구만 갔다 나왔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성당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2유로입니다. 

패키지여행으로 시간이 부족하여 오르지 못한 것입니다.

내려올 때는 나선형 계단으로 걸어 내려오는 곳이라고 하니까 더 아쉬움이 가득합니다.

지금도 체력이 부족한데,

후일에는 올라간다 해도 내려올 힘이 될지,

그래서 더욱 아쉬움이 많습니다.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곳에 있는 성당이 아닙니다.

 

복잡한 도시의 일상이 이어지는 곳에 우뚝 서 있고 

 

지금도 지어지고 있는 성가족성당입니다.

 

엄숙함을 요구하는 곳에 지어지지 않았지만,

 

완전하지 못하여 

 

반복된 실수와 잘못이 더해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이 살아가는 중심에 

 

위로와 격려의 선물로 지어진 것 같습니다.

 

스스로 이르기를 난 인간이야 그래서 할 수 없어 

 

난 신이 아니니 그릇된 판단과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자포자기할지 몰라

 

 인간의 삶의 중심에 신께서 더 가까이하셔 

 

 위로와 돌이킴과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려고

 

여기에 만들게 하신 

 

하나님 사랑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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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한복판 성가족성당 가는 길입니다.

그동안은 펼쳐진 대자연을 벗 삼아 여행했는데 

 

여기 천재건축가가 잠들고 있는 곳은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 옆에 위치하여 혼잡하고 

 

자동차 소음과 성당 공사 소리가 더해져 경건함을 찾기에는 

다소 많이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성당에 도착하여 정문을 들어서자 무언가에 압도당한 듯 

묵묵히 줄지어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리다 들어갑니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마음 한편에

 신께로 향하는 경건함이 간직되어 있는듯합니다.

 

바르셀로나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입니다.

 

 

 

 

 

 

가우디의 정신!

이 성당에 대하여 알고자 하기 전 먼저 

 

카탈루냐 정신에 대하여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정신세계와 뼛속까지 심어진 카탈루냐정신이 

가우디의 건축의 세계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카탈루냐인임을 자랑스러워했던 천재 건축가는

카탈루냐정신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어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격이라서

건축작업을 대충 대충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카탈루냐 정신이란= 스페인은 역사적으로

(바스케. 카탈루냐. 카스티야. 갈리시아) 

각각의 독립성을 가진 국가로 나뉘어 있었고

그중 지역성이 강한 카탈루냐와 카스티야의 갈등은 심했다고 합니다. 

 

 

 

 

 

항구도시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공업에 종사하던 하층민이 거주하던 카탈루냐와 카스티야는

 

신분. 지리. 사회적으로 추구하는 정책도 달라 잦은 충돌이 있었다고 하는데,

 

20세기 초 정권을 등에 업은 카스티야가 국가정책의 주도권을 행사하면서

 

 두 지역 간의 관계가 나빠지고 힘이 약한 카탈루냐는 늘 희생자였다고 합니다.

 

급기야 고유언어와 문화를 가진 카탈루냐민족의 독립성은

 

 점차 빛을 잃어 정치적 상황은 복잡해져 가고 위기를 맞게 됩니다.

 

결국, 스페인은 카탈루냐어 교육을 금지하고

 

 민족의 독립성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문화적 자긍심이 강한 카탈루냐인은 사라지는 언어와 문화를 되살리고자

 

(레나센샤) 카탈루냐 문예부흥운동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유문화와 옛 영광을 찾고자 하는 운동은

 

지식인 일부로 시작했지만, 예술 전 분야로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건축분야도 중세시대 자기 민족과 문화에 대한 향수를

 

 성당건축을 통한 고딕 복고양식으로 표현했고 

 

여러 분야에서 정체성 부활을 위해 중세를 재조명하고

 

변화와 혁신을 이루려는 운동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레나센샤 운동을 통해 찾고자 하는 고유 정체성에는

 

 가족애. 자연풍경. 가정. 종교 중 종교는 가장 중요한 중심점이었고

 

이 운동은 가우디에게 수공예기술에 대한 존경심과 

 

예술의 정직성을 깨우치게 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고향이 가진 대자연과 건축유적에 새겨진 카탈루냐정신에

 

 남다른 애정을 가졌던 가우디는 많은 영향을 받았고 

 

가우디의 작품에서 고유문화와 종교적인 색채는 작품 속에서도 쉽게 발견되고

 

특히 성가족성당은 카탈루냐만의 독창성을 표현하고 있는 건축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가우디는 건축 분야에 나무나 철골 같은 보강 없

 카탈루냐식 독특한 구조체로 재탄생시켰다고 합니다.

 

급변하는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찾아 몸부림치는 사회 분위기 속에 

뜨거운 열정을 안고 작품세계에 몰입하던 건축가 가우디는 

 

자신이 갖춘 능력과 시간을 부귀영화를 위해 사용하지 않고 

오직 자기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하는 데 온전히 바친

진정한 민족주의자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카탈루냐 민족은 가우디에게는 절대적인 존재였다고 합니다.

 온 세상에 카탈루냐를 알리고 빛낸 건축가 가우디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신 하나님의 일꾼이었던 것 같습니다.

 

 

 

 

 

운명의 사람 가우디!!!

순수 합리적인 건축이 절정을 이루던 시대에

 

 자유로운 곡선의 아름다움을 고집한 가우디의 건축은 

상상할 수 없는 뛰어난 것이었고 모든 관심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가우디의 건축작품을 폄하하는 사람 중에 

동물농장을 쓴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성가족성당을 놓고

 

 가장 혐오스러운 건물이며 혁명 기간에 손상을 입지 않은 점은

 많은 사람은 예술적 가치 때문이었다고 말하나 

 

 

자기 생각엔 무정부주의자들이 폭격할 기회가 있음에도 

기분을 망치지 않으려고 이 흉물스러운 건물을 피해 갔다는 표현을 했다고 합니다.

 

가우디에 대하여 여러 비난이 함께하는 것은 

가우디 개인의 삶. 축관. 개인사적인 일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우디의 친구나 제자에 의해 기록되었던 

 

가우디 어록이나 건축스케치마저 

1936년 7월 무정부주의자들이 파손시킴으로

 

 가우디의 인간적인 면과 생각들은 알 수 없는 베일에 쌓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가우디는 심한 비난을 받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다양한 작품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영감을 불어넣었다고 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의 고정관념은 깨트리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 분야가 어떻든지 기존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 하며

건축분야에 새로운 독창적인 방법을 놓고

 

 자신이 하지 않은 것에는 배타적인 점도 가미되어 많은 질시도 받았을 것 같습니다.

 

그 아무리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라 해도 인간은 질투와 시샘의 유혹을 

 

넘어서기 어려운 약한 존재이기에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생전에 가우디는 말이 없고 허름한 차림새에 

이상한 실험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괴짜라는 꼬리표를 항상 달고 살았다는데.

그러한 가우디의 성격을 묘사하는 말 중에는 

 

귀족적이면서 천박한 멋쟁이이자 방랑자. 

박식하지만 오락가락하는 자.

기지가 넘치지만 재미없는 사람. 등 

 

가우디의 행동으로 인해 왜곡되게 표현하고 바라봤겠지요.

일반 사람의 생각과 눈으로 

가우디의 예술 세계를 헤아릴 수 없었겠지요,

 

그 어찌 평범한 사람의 마음으로 신께로 드려지는 

가우디 믿음의 고백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평범에서 나오는 부족함의 표현이

어쩌면 가우디 작품의 천재성에 대한 부러움에서 일어난 시기였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가우디의 친구나 동료 그리고 가족이 남긴 기록이 있다는데

 

외부에서 바라본 가우디는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연과 민족을 사랑한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가진 으며

 비록 자신은 가정을 가질 수 없지만

그 대신 친구의 아들을 자기 아들처럼 여길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다고 합니다.

믿음의 사람 가우디는 살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자

 

일생을 바친 신이 보낸 건축가이며 

그러하기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건축의 형태를 만드는 마술사였다고 합니다.

 

 

 

 

43년 동안 온 힘을 기울여 성당을 건축하며 

가우디는 신께서 빨리 건축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다고 합니다.

요즘 건축 신속하게 지어집니다.

 

가우디의 성당건축은 일반적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의 귀한 예물이었니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 가우디는 건축하는 동안 내내

 작업장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규칙적인 생활하던 가우디가 하루에 한 번씩 거리를 나서는데

 이유는 고질적인 류머티즘으로 운동하기 위하여 산책했다고 합니다.

 

 

오후 5시 반이면 가우디는 같은 코스로 근처 교회까지 걸어갔다. 오는데

1926년 오후 5시 반 성당에서 나와 늘 하던 산책에 나서고

6시쯤 바이렌 거리에 도착 길을 건너기 위해 걸음을 멈추었고

이 거리는 붉은 십자가라고 하는 폭이 넓은 거리였다고 합니다.

 

 운명이 거기까지였는지 그만 전차에 치이게 되는 사고가 났다고 합니다.

당시 경찰의 보고서에 기록된 것은 가우디의 이름이 언급되어있었으나

 사람을 친 운전자도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잡았던 택시운전사도 

다 가우디를 부랑자라고 생각하여 

가우디를 병원으로 옮기는 일을 외면 해버려 

가우디는 사고 직후 오랫동안 거리에 방치되어야만 했다고 합니다.

참 슬픈 일입니다.

 

 

 

규칙적인 생활 하는 가우디가 돌아오지 않

그때 교회 관련 사제에게 알리게 되고 급기야 택시를 불러 주변 병원을 돌아다니며

 부상자나 사망자가 있는지 수소문하던 중 

자정이 다되어 중태에 빠진 가우디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우디는 성체 세례를 받을 것인지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고 합니다.

가우디는 주께로 돌아가야 함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매우 심한 중상으로 고통스러웠을 가우디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라는

작은 소리를 끝으로 신실한 가우디의 생이 마무리고 

74년의 일생을 마치고 그리스도께로 돌아갔습니다.

 

 

죽기 전 두 가지 유언을 남겼다는데

자신의 전 재산을 성가족성당에 기부한다는 것과 

장례행렬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소소한 장례를 원했지만. 가우디를 사랑하는 사람은

 바르셀로나를 울릴 만큼 성대하게 가우디의 마지막 장례를 치렀다고 합니다.

 

성가족성당 지하납골당에 묻힌 가우디

성직자가 아닌데도 진정한 수도자로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

 가우디는 그렇게 떠났고, 가우디의 성당 설계도면은 비록 사라졌으나

그의 정신은 살아있어 가우디 뒤를 이어

 믿음의 건축가들이 지금도 성당을 짓고 있어 

가우디 사후 100년이 되는 2026년에 완공을 목표로 짓고 있다고 합니다.

 

 

 

 

세상 살며 신의 특별함을 입지 않고는 자신을 버리고 살기 어렵습니다.

신의 은혜가 아니면 인간의 욕심을 버리기 불가능니다.

 

인생을 자신이 살아가며 결정하고 이루며 사는 것 같으나 

살아보니 뒤돌아보니 신의 은혜입니다.

 

신께서 걸어가라 하신길을 걸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남보다 조금 많다고 높다고 교만한 것도 부질없

남보다 못하다고 해서 불평할 것도 아님에도

 끊임없이 밀려드는 유혹을 벗어날 수 없는 연약한 심지를 가진 인간입니다. 

 

희망 없으므로 끝낼 인생,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희망 있으로 달려가다가

처음 왔던 그대로 두 손 펼친 채로 빈손으로 돌아가나 봅니다.

 

 

 

 

성당이 지어진 것 중에서 

가우디와는 다른 건축가가 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른쪽 어두운 부분이 건축물은 가우디가 만들었던 부분이고

왼쪽 밝은 부분은 현재 지어지는 부분이라고 합니다.

 

 

 

 

 

 

윙윙대는 기계음 소리가 끊이지 않고

복잡함 가운데 한편에서는 공사 중이라 금지된 곳도 잇고

 한편에서는 그런데도 개의치 않고

믿음의 선진들의 작은 고백으로 지어졌을 성당을 돌아봅니다

 

비록 타 종교인이라 할지라도 자신도 모르게 압당하듯 

경건함 가운데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발걸음이

 꼭 참회하는 마음으로 걸음을 떼어놓는 듯합니다.

많은 사람이 관람하게 되어 차례대로 줄을 서서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조급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믿음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자신의 믿음을 굳게 하는 기회로 삼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이 놀라운 장관을 보며 할 말을 잊었을지도 모릅니다.

 
     

 

위의 사진처럼 지어질 2026년 그때면 나는 70이 될 나이라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일이라

만일 다시 볼 수 없다 해도 아쉬움이 없을 것은 후일 완공된 이곳 성가족성당에서 

또 다른 많은 사람이 신의 은총을 느낄 수 있기에 그날을 기다립니다.

아름다운 에스파냐 

아디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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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버스는 한산한 지역을 지나

빌딩과 차량이 많아지는 곳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바르셀로나 시내에 진입했다고 하는

가이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붐비는 인파와 오토바이 자동차 빌딩과 건물이 가득한 

오랜만의 도시의 복잡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는 어디지? 그것도 잊어버렸습니다.

경기장인듯하고 아닌가 아휴 내 정신이야 그렇게 잊어버렸습니다.

할 수 없이 모를 때는 다시 역사 속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지요.

 

궁금하신 분은 바르셀로나 가셔서 알아보셔요~~~

 

 카탈류냐 미술관 전경

 

 

  우리나라도 과거 오래전부터

삼국으로 나뉘었다. 통일이 되었다. 더 작은 소국으로 된 적도 있고

우여곡절이 많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완전 100%의 융합은 아직 안 된 2% 부족합니다.

 

 지역마다 특색과 자존심을 가지고 사는 것이

현재의 세상을 살아가는것 인지도 모릅니다.

 

 

 

 스페인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복잡한 역사를 가졌다고 합니다.

 

이곳의 로마 지배 시절의 옛 이름은 히스파니아라고 하는데

히스파니아는 로마제국 일부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히스파니아는 로마제국의 중요한 부분으로 성장했었다고 합니다.

 

중세 초반에는 게르만 족의 지배를 받았었고

그 시대 이후에는 이슬람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독교신앙으로 무장한 기독교 군사의 오랜 투쟁과 국토회복운동 결과로

전쟁 끝에 드디어 1492년에 기독교 왕국이

 주먹 모양의 이베리아 반도에 세워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 후 절대적인 왕을 중심으로 한 정치와

식민지 개척을 추진하여 얻어진 금은보화 여러 물품으로

가장 강력한 대국으로 성장 자리 잡게 된 무적 대국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쟁과 내분으로

해지지 않는 에스파냐 대국이란 명성은 오래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국가 간의 전쟁도 그렇지만 내분으로 인한 국가의 황폐함은

진정 마음아픈 일이지요.

후회와 회한만 남는 국가의 재앙입니다.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하고 에스파냐는 20세기 초반에서 중반까지

프란시스코 독재정권 아래에서 가장 부강했던 나라

해지지 않는 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여곡절을 겪은 자존심이 강한 에스파냐는 드디어 1975년 독재 정권의 막을 내리게 되고

에스파냐는 유럽을 넘어 전 세계를 주름잡던 기백을 살려

고도의 경제발전과 사회적으로도 안정을 이루게 되어 1986년 유럽연합에 가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선사시대 이베리아 반도는 약 3만5천 년 전에 피레네 산맥을 넘어

현재의 이베리아반도로 크로마뇽인과 비슷한 인류가

 진출하게 되어 거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증거로 북부지방의 알타미라 동굴에는

선사시대 유적으로 매우 유명한 벽화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기원 1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벽화도 존재할 뿐 아니라

 아타 푸에르카 지방에서 발견된 새로운 유적지에서는 오래전

백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 지역에 살았던 이베리아족과 켈트족은 지중해 쪽과 남서쪽에 모여 살게 되었고

이후 대서양 쪽으로도 옮겨 거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코임브라와 브라카와 세고비아에는

 지금도 켈트족의 고대도시의 흔적들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이베리아족은 그들이 사용하던 언어를

이베리아 반도의 에브로 라고 긴 강의 이름으로 남겼다고 합니다.

이베리아족의 후손 중 한 갈래인 바스크족은

피레네 서부를 점령하여 살았다고 하는데

바스크족의 특별한 언어와 풍습은 지금도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원전 300~500년 사이에 페니키아인이 거주하게 되고

  그리스인도 당시 지중해연안에 교역중심인 식민도시를 건설하여

활발한 교역을 펼쳤다고 합니다.

그중에 현대까지 남아있는 도시로

 엠프리아. 마라가.아리칸테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페니키아인이 세운 도시로는 카르테지가 남아있다고 하는데

페니키아인은 로마제국에 정복당하게 되는데

로마와 대적한 그 유명한 한니발의 아버지 하밀카르 바르카가 세운

카르테 헤나가 현재까지 도시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의 이름은 당시 도시 중 하나인 바르키노에 남았는데

바로 이 이름에서 바르셀로나가 유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복잡한 이 나라의 역사 당시에는 아하 그랬구나! 이해한 듯 대답했지만,

한참을 복습해야 하는 먼 나라 남의 나라 역사입니다.

육십오기 전에 어느 정도는 반복 학습하고

이 계기를 통해 에스파냐 문학도 탐독하고 싶어지는

도전의 마음이 새록새록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내 취향의 눈이 번쩍 뜨이는 에스파냐 문학입니다. 두어 개라도 알고 가려 합니다.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 사는 곳 바르셀로나입니다.

 카탈루냐 시민은 카탈루냐 나라로의 독립을 원하여

아래 아파트에 국기 보이시죠

저렇게 국기를 내걸어 놓는다고 합니다.

 

 

 

 에스파냐인으로 불리기보다는

카탈루냐왕국 국민으로 불리기 원하는 열망이 가득하다고 합니다만,

그 염원 때문에 이곳뿐 아니라

다른 지역 바르셀로나지역은 가는 곳마다 띄엄띄엄

옛 카탈루냐 왕국의 문장과 국기를 걸어놓은 곳이 여러 곳이 눈에 띄게 됩니다.

 

 그러나 정치적 기득권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살짝 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지만,

태극기나 애국가를 듣거나 볼 때

눈물이 핑그르르 도는 나의 마음도 그러한데 그건 당연한 자부심입니다.

 

 

 

 버스로 지나가며 바라본

아름다운 건축물에 압도되며 여행을 했는데

나도 우리나라 옛것에 관심 좀 가지며 살아야겠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예술의 도시 에스파냐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미술관입니다.

 

카탈루냐 왕국의 후손임을 자랑스러워하며 

옛 영광을 그리워하고 자부심을 느끼고 사랑하기에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절대 분열이 아닌 자부심의 표현으로

능히 그럴 수 있다고 여깁니다.

 

 

 

 버스가 도심 진입하니 정말 독특한 건물이 나타났습니다.

 

이 도심에 예술은 몰라도 아름답게 우뚝 서 있는 건물에 함께한 일행도 감탄사를 보냅니다.

이 건물이 성 가족성당을 최초 설계한 천재건축가 가우디 작품이라고 합니다.

 

 

 

 

 

 

 천재 건축가의 작품을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인체의 내부를 모델화 하여 설계를 했다고 합니다.

 

 

 

 버스는 시내를 돌아 바르셀로나 중심 백화점이 있는 광장을 빙 둘러

쇼핑 천국이라고 할 정도의

 번화한 거리에 우리 일행을 내려주었습니다.

 

 

 

 람블라스거리 산호셉시장 여기저기 빙 둘러봤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지나갔습니다.

어떤 분은 여행이 취미라고 하는데

동생이나 친구와 함께 오는 것이 즐겁겠다는 생각도 하며 살짝 부러운 생각이 들었답니다.

 

 

 

 세상 어디 자기 마음대로만 할 수는 없으니까,

 젊은 사람은 제외하고 남편과 함께 온 나는 생각하기를...

마음만은 낭만 소녀로 거리를 이 나라를 문화를

돌아보는 것도 자유로움을 즐기는 여행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다를 사랑하며 자유를 꿈꾸는 나를 생각하는 시간, 저 방황하는 엄마 아닙니다.

단지 나를 생각해보자는 느낌이 

에스파냐 마지막 여행지에서 들게 되었습니다.

아디오스

 

에스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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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열아홉 아닌데 내일 모래면 글피면 60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그 말에 힘있게 맞습니다!

라고 힘있게 말하고 싶습니다.

에스파냐를 여행하며  초록색을 좋아하는 저는 두근거림을 주체할 수 없었답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철이 덜 든 것처럼 두 눈을 힘주어가며 여행을 합니다.

아름다운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떠올리며

아름답게 가꾸어진 지상 최고의 정원이라는 찬사를 해도

 전혀 무리가 없는 알함브라 궁전입니다.

이 아름다운 초록 천지를 바쁘게 잰걸음으로 관람했습니다.

 

 

 

 10세기에 세워진 카스티야 왕국은

1085년 이슬람의 중요 거점인 톨레도를 함락시키고

그리스도교의 군사들이 1212년 톨로사 전투도 승리를 거두게 되자

 이슬람 세력은 줄어들게 되고 이슬람 소왕국들도 그리스도교들의 군사에 의해 멸망되어가고

 1238년 그라나다에 세워진 나스르 왕국도 결국은 그라나다를 양도하게 되었답니다

마지막 왕조 나스르 왕국은 1492년 멸망할 때까지

 위세가 차츰차츰 작아져 갔지만 화려한 이슬람 문화의 꽃을 활짝 피웠다고 합니다.

 

 

 

 

이 궁전을 함락시킨 이사벨 여왕은

 1492년 이 알함브라궁전을 가톨릭 도시로 만들려고 했으나

아름다운 알함브라 궁전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반하여 생각을 바꾸어 보존하기로 했다는군요.

그래서 이 알함브라 궁전은 그대로 두고 부근에 프란체스코 회의 수도원을 세우고

알함브라 궁전의 모스크를 성당으로 고친 것 외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래 장소에서 기념사진 한 장 찰칵

 

 

 

 

 그러니 많은 관광객이 문화유산으로 이곳 알함브라 궁전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지 않습니까

아쉬운 것은 이사벨 여왕의 살아생전에는 그대로 보존되었으나

후대 카를로스 5세는 중심에 자신의 왕궁을 세웠다고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사라진 것에 대한 궁금함이 더욱 애석함을 느낍니다.

카를로스 5세가 고용한 건축가 페드로 데 마추가 가 16세기 초부터 왕궁을 짓기 위해 여러 개의 방을 헐었다고 합니다.

아깝다 ㅠㅠㅠ

 

 

 

 중앙에 분수대의 흘러내리는 물도 시에라 네바다 산맥에서 내려오는 물이라고 합니다.

정원의 곳곳마다 크고 작은 수로가 있어 메마른 곳이 없는 알함브라 궁전입니다.

 

 

 

 

 

 1492년 1월 2일 나스르 왕국의 마지막 지도자인 무함마드 12세가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왕 페르난도 2세에게 항복함으로

이베리아반도의 이슬람은 완전히 망하기에 이릅니다.

711년 타라크 이븐 지야드 이슬람 지도자가 이끄는 군사들이

지브롤터를 건너 이베리아반도를 함락했지만 780년 만에 이슬람 세력은 영원히

이베리아반도에서 영향력을 잃게 되었답니다.

 

 

 

 

 

 알함브라를 양도하고 그라나다를 떠나 모로코로 망명길을 떠나는

무함마드 12세 보압딜은 그라나다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알함브라 궁전을 다시는 보지 못하다니 라고

 탄식하며 눈물을 흘리자

아들과 함께 가톨릭 군과 맞서 싸웠던 보압딜의 어머니가

 여자같이 울지 말라고 말하며

남자답게 그라나다 끝까지 지키지 못했으면서 우느냐고 아들 보압딜을 꾸짖었다고 합니다.

 

 

 

 

 마지막 이슬람 왕 보압딜이 눈물을 흘리던 그 고개이름은

 엘 수 스피로 델 모로 라고 불리는데 (무어인의 마지막 탄식) 이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가 살만 루시디의 소설 마지막 탄식의 소재가 되었다고 합니다.

 

 

 

 

 울창한 초록의 세상입니다.

초록은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켜준다고 합니다.

터널을 만들어 덩굴식물로 올려 자라게 하여 매우 아름답게 만들어진 초록의 터널입니다.

사철을 이러한 정원에서 지낸다면 있는 질환 다 사라질 것 같습니다.

 

 

 

 

 더 높이 더 높이 올라가는 고층건물과 아파트는 편리함도 있겠으나

흙의 원소가 사람과 같다고 하니 아무래도 흙내음 맡으며 사는 것이

 몸도 마음도 정신건강에도 매우 좋을 것 같습니다.

에스파냐는 넓은 국토가 있어

 바르셀로나를 제외하면 아주 높은 건물은 없는 것 같더군요,

이렇게 아름다우니

당연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겠지만 많이 아주 많이 생각나고 떠올려지고

그리워질 것 같은 알람브라 궁전의 관람 시간이었습니다.

 

 

 사계절이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어느 나라는 밤이 오래가는 곳이 있고 또 다른 나라는 낮만 계속되는 나라도 있지요,

여기 에스파냐도 밤 9홉 시가 넘었는데도 대낮같이 훤하니 조금 어색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낮과 밤이 확실히 구분되어 있어

생체리듬에서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진 나라라는 것입니다.

성큼 다가온 가을은 막바지 불볕으로 열매를 튼실하게 만들어주고 있어

기분 좋은 더위랍니다.

우리나라의 먼 아래 부근에 외도라는 섬이 있는데

개인이 오랫동안 가꾸어온 아름다운 섬이라고 합니다.

저는 가보지 못했지만, 남편이 다녀온 후 외도의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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