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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버스는 한산한 지역을 지나

빌딩과 차량이 많아지는 곳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바르셀로나 시내에 진입했다고 하는

가이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붐비는 인파와 오토바이 자동차 빌딩과 건물이 가득한 

오랜만의 도시의 복잡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는 어디지? 그것도 잊어버렸습니다.

경기장인듯하고 아닌가 아휴 내 정신이야 그렇게 잊어버렸습니다.

할 수 없이 모를 때는 다시 역사 속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지요.

 

궁금하신 분은 바르셀로나 가셔서 알아보셔요~~~

 

 카탈류냐 미술관 전경

 

 

  우리나라도 과거 오래전부터

삼국으로 나뉘었다. 통일이 되었다. 더 작은 소국으로 된 적도 있고

우여곡절이 많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완전 100%의 융합은 아직 안 된 2% 부족합니다.

 

 지역마다 특색과 자존심을 가지고 사는 것이

현재의 세상을 살아가는것 인지도 모릅니다.

 

 

 

 스페인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복잡한 역사를 가졌다고 합니다.

 

이곳의 로마 지배 시절의 옛 이름은 히스파니아라고 하는데

히스파니아는 로마제국 일부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히스파니아는 로마제국의 중요한 부분으로 성장했었다고 합니다.

 

중세 초반에는 게르만 족의 지배를 받았었고

그 시대 이후에는 이슬람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독교신앙으로 무장한 기독교 군사의 오랜 투쟁과 국토회복운동 결과로

전쟁 끝에 드디어 1492년에 기독교 왕국이

 주먹 모양의 이베리아 반도에 세워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 후 절대적인 왕을 중심으로 한 정치와

식민지 개척을 추진하여 얻어진 금은보화 여러 물품으로

가장 강력한 대국으로 성장 자리 잡게 된 무적 대국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쟁과 내분으로

해지지 않는 에스파냐 대국이란 명성은 오래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국가 간의 전쟁도 그렇지만 내분으로 인한 국가의 황폐함은

진정 마음아픈 일이지요.

후회와 회한만 남는 국가의 재앙입니다.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하고 에스파냐는 20세기 초반에서 중반까지

프란시스코 독재정권 아래에서 가장 부강했던 나라

해지지 않는 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여곡절을 겪은 자존심이 강한 에스파냐는 드디어 1975년 독재 정권의 막을 내리게 되고

에스파냐는 유럽을 넘어 전 세계를 주름잡던 기백을 살려

고도의 경제발전과 사회적으로도 안정을 이루게 되어 1986년 유럽연합에 가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선사시대 이베리아 반도는 약 3만5천 년 전에 피레네 산맥을 넘어

현재의 이베리아반도로 크로마뇽인과 비슷한 인류가

 진출하게 되어 거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증거로 북부지방의 알타미라 동굴에는

선사시대 유적으로 매우 유명한 벽화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기원 1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벽화도 존재할 뿐 아니라

 아타 푸에르카 지방에서 발견된 새로운 유적지에서는 오래전

백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 지역에 살았던 이베리아족과 켈트족은 지중해 쪽과 남서쪽에 모여 살게 되었고

이후 대서양 쪽으로도 옮겨 거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코임브라와 브라카와 세고비아에는

 지금도 켈트족의 고대도시의 흔적들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이베리아족은 그들이 사용하던 언어를

이베리아 반도의 에브로 라고 긴 강의 이름으로 남겼다고 합니다.

이베리아족의 후손 중 한 갈래인 바스크족은

피레네 서부를 점령하여 살았다고 하는데

바스크족의 특별한 언어와 풍습은 지금도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원전 300~500년 사이에 페니키아인이 거주하게 되고

  그리스인도 당시 지중해연안에 교역중심인 식민도시를 건설하여

활발한 교역을 펼쳤다고 합니다.

그중에 현대까지 남아있는 도시로

 엠프리아. 마라가.아리칸테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페니키아인이 세운 도시로는 카르테지가 남아있다고 하는데

페니키아인은 로마제국에 정복당하게 되는데

로마와 대적한 그 유명한 한니발의 아버지 하밀카르 바르카가 세운

카르테 헤나가 현재까지 도시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의 이름은 당시 도시 중 하나인 바르키노에 남았는데

바로 이 이름에서 바르셀로나가 유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복잡한 이 나라의 역사 당시에는 아하 그랬구나! 이해한 듯 대답했지만,

한참을 복습해야 하는 먼 나라 남의 나라 역사입니다.

육십오기 전에 어느 정도는 반복 학습하고

이 계기를 통해 에스파냐 문학도 탐독하고 싶어지는

도전의 마음이 새록새록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내 취향의 눈이 번쩍 뜨이는 에스파냐 문학입니다. 두어 개라도 알고 가려 합니다.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 사는 곳 바르셀로나입니다.

 카탈루냐 시민은 카탈루냐 나라로의 독립을 원하여

아래 아파트에 국기 보이시죠

저렇게 국기를 내걸어 놓는다고 합니다.

 

 

 

 에스파냐인으로 불리기보다는

카탈루냐왕국 국민으로 불리기 원하는 열망이 가득하다고 합니다만,

그 염원 때문에 이곳뿐 아니라

다른 지역 바르셀로나지역은 가는 곳마다 띄엄띄엄

옛 카탈루냐 왕국의 문장과 국기를 걸어놓은 곳이 여러 곳이 눈에 띄게 됩니다.

 

 그러나 정치적 기득권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살짝 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지만,

태극기나 애국가를 듣거나 볼 때

눈물이 핑그르르 도는 나의 마음도 그러한데 그건 당연한 자부심입니다.

 

 

 

 버스로 지나가며 바라본

아름다운 건축물에 압도되며 여행을 했는데

나도 우리나라 옛것에 관심 좀 가지며 살아야겠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예술의 도시 에스파냐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미술관입니다.

 

카탈루냐 왕국의 후손임을 자랑스러워하며 

옛 영광을 그리워하고 자부심을 느끼고 사랑하기에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절대 분열이 아닌 자부심의 표현으로

능히 그럴 수 있다고 여깁니다.

 

 

 

 버스가 도심 진입하니 정말 독특한 건물이 나타났습니다.

 

이 도심에 예술은 몰라도 아름답게 우뚝 서 있는 건물에 함께한 일행도 감탄사를 보냅니다.

이 건물이 성 가족성당을 최초 설계한 천재건축가 가우디 작품이라고 합니다.

 

 

 

 

 

 

 천재 건축가의 작품을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인체의 내부를 모델화 하여 설계를 했다고 합니다.

 

 

 

 버스는 시내를 돌아 바르셀로나 중심 백화점이 있는 광장을 빙 둘러

쇼핑 천국이라고 할 정도의

 번화한 거리에 우리 일행을 내려주었습니다.

 

 

 

 람블라스거리 산호셉시장 여기저기 빙 둘러봤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지나갔습니다.

어떤 분은 여행이 취미라고 하는데

동생이나 친구와 함께 오는 것이 즐겁겠다는 생각도 하며 살짝 부러운 생각이 들었답니다.

 

 

 

 세상 어디 자기 마음대로만 할 수는 없으니까,

 젊은 사람은 제외하고 남편과 함께 온 나는 생각하기를...

마음만은 낭만 소녀로 거리를 이 나라를 문화를

돌아보는 것도 자유로움을 즐기는 여행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다를 사랑하며 자유를 꿈꾸는 나를 생각하는 시간, 저 방황하는 엄마 아닙니다.

단지 나를 생각해보자는 느낌이 

에스파냐 마지막 여행지에서 들게 되었습니다.

아디오스

 

에스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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