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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한복판 성가족성당 가는 길입니다.

그동안은 펼쳐진 대자연을 벗 삼아 여행했는데 

 

여기 천재건축가가 잠들고 있는 곳은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 옆에 위치하여 혼잡하고 

 

자동차 소음과 성당 공사 소리가 더해져 경건함을 찾기에는 

다소 많이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성당에 도착하여 정문을 들어서자 무언가에 압도당한 듯 

묵묵히 줄지어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리다 들어갑니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마음 한편에

 신께로 향하는 경건함이 간직되어 있는듯합니다.

 

바르셀로나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입니다.

 

 

 

 

 

 

가우디의 정신!

이 성당에 대하여 알고자 하기 전 먼저 

 

카탈루냐 정신에 대하여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정신세계와 뼛속까지 심어진 카탈루냐정신이 

가우디의 건축의 세계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카탈루냐인임을 자랑스러워했던 천재 건축가는

카탈루냐정신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어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격이라서

건축작업을 대충 대충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카탈루냐 정신이란= 스페인은 역사적으로

(바스케. 카탈루냐. 카스티야. 갈리시아) 

각각의 독립성을 가진 국가로 나뉘어 있었고

그중 지역성이 강한 카탈루냐와 카스티야의 갈등은 심했다고 합니다. 

 

 

 

 

 

항구도시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공업에 종사하던 하층민이 거주하던 카탈루냐와 카스티야는

 

신분. 지리. 사회적으로 추구하는 정책도 달라 잦은 충돌이 있었다고 하는데,

 

20세기 초 정권을 등에 업은 카스티야가 국가정책의 주도권을 행사하면서

 

 두 지역 간의 관계가 나빠지고 힘이 약한 카탈루냐는 늘 희생자였다고 합니다.

 

급기야 고유언어와 문화를 가진 카탈루냐민족의 독립성은

 

 점차 빛을 잃어 정치적 상황은 복잡해져 가고 위기를 맞게 됩니다.

 

결국, 스페인은 카탈루냐어 교육을 금지하고

 

 민족의 독립성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문화적 자긍심이 강한 카탈루냐인은 사라지는 언어와 문화를 되살리고자

 

(레나센샤) 카탈루냐 문예부흥운동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유문화와 옛 영광을 찾고자 하는 운동은

 

지식인 일부로 시작했지만, 예술 전 분야로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건축분야도 중세시대 자기 민족과 문화에 대한 향수를

 

 성당건축을 통한 고딕 복고양식으로 표현했고 

 

여러 분야에서 정체성 부활을 위해 중세를 재조명하고

 

변화와 혁신을 이루려는 운동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레나센샤 운동을 통해 찾고자 하는 고유 정체성에는

 

 가족애. 자연풍경. 가정. 종교 중 종교는 가장 중요한 중심점이었고

 

이 운동은 가우디에게 수공예기술에 대한 존경심과 

 

예술의 정직성을 깨우치게 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고향이 가진 대자연과 건축유적에 새겨진 카탈루냐정신에

 

 남다른 애정을 가졌던 가우디는 많은 영향을 받았고 

 

가우디의 작품에서 고유문화와 종교적인 색채는 작품 속에서도 쉽게 발견되고

 

특히 성가족성당은 카탈루냐만의 독창성을 표현하고 있는 건축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가우디는 건축 분야에 나무나 철골 같은 보강 없

 카탈루냐식 독특한 구조체로 재탄생시켰다고 합니다.

 

급변하는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찾아 몸부림치는 사회 분위기 속에 

뜨거운 열정을 안고 작품세계에 몰입하던 건축가 가우디는 

 

자신이 갖춘 능력과 시간을 부귀영화를 위해 사용하지 않고 

오직 자기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하는 데 온전히 바친

진정한 민족주의자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카탈루냐 민족은 가우디에게는 절대적인 존재였다고 합니다.

 온 세상에 카탈루냐를 알리고 빛낸 건축가 가우디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신 하나님의 일꾼이었던 것 같습니다.

 

 

 

 

 

운명의 사람 가우디!!!

순수 합리적인 건축이 절정을 이루던 시대에

 

 자유로운 곡선의 아름다움을 고집한 가우디의 건축은 

상상할 수 없는 뛰어난 것이었고 모든 관심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가우디의 건축작품을 폄하하는 사람 중에 

동물농장을 쓴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성가족성당을 놓고

 

 가장 혐오스러운 건물이며 혁명 기간에 손상을 입지 않은 점은

 많은 사람은 예술적 가치 때문이었다고 말하나 

 

 

자기 생각엔 무정부주의자들이 폭격할 기회가 있음에도 

기분을 망치지 않으려고 이 흉물스러운 건물을 피해 갔다는 표현을 했다고 합니다.

 

가우디에 대하여 여러 비난이 함께하는 것은 

가우디 개인의 삶. 축관. 개인사적인 일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우디의 친구나 제자에 의해 기록되었던 

 

가우디 어록이나 건축스케치마저 

1936년 7월 무정부주의자들이 파손시킴으로

 

 가우디의 인간적인 면과 생각들은 알 수 없는 베일에 쌓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가우디는 심한 비난을 받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다양한 작품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영감을 불어넣었다고 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의 고정관념은 깨트리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 분야가 어떻든지 기존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 하며

건축분야에 새로운 독창적인 방법을 놓고

 

 자신이 하지 않은 것에는 배타적인 점도 가미되어 많은 질시도 받았을 것 같습니다.

 

그 아무리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라 해도 인간은 질투와 시샘의 유혹을 

 

넘어서기 어려운 약한 존재이기에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생전에 가우디는 말이 없고 허름한 차림새에 

이상한 실험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괴짜라는 꼬리표를 항상 달고 살았다는데.

그러한 가우디의 성격을 묘사하는 말 중에는 

 

귀족적이면서 천박한 멋쟁이이자 방랑자. 

박식하지만 오락가락하는 자.

기지가 넘치지만 재미없는 사람. 등 

 

가우디의 행동으로 인해 왜곡되게 표현하고 바라봤겠지요.

일반 사람의 생각과 눈으로 

가우디의 예술 세계를 헤아릴 수 없었겠지요,

 

그 어찌 평범한 사람의 마음으로 신께로 드려지는 

가우디 믿음의 고백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평범에서 나오는 부족함의 표현이

어쩌면 가우디 작품의 천재성에 대한 부러움에서 일어난 시기였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가우디의 친구나 동료 그리고 가족이 남긴 기록이 있다는데

 

외부에서 바라본 가우디는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연과 민족을 사랑한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가진 으며

 비록 자신은 가정을 가질 수 없지만

그 대신 친구의 아들을 자기 아들처럼 여길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다고 합니다.

믿음의 사람 가우디는 살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자

 

일생을 바친 신이 보낸 건축가이며 

그러하기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건축의 형태를 만드는 마술사였다고 합니다.

 

 

 

 

43년 동안 온 힘을 기울여 성당을 건축하며 

가우디는 신께서 빨리 건축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다고 합니다.

요즘 건축 신속하게 지어집니다.

 

가우디의 성당건축은 일반적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의 귀한 예물이었니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 가우디는 건축하는 동안 내내

 작업장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규칙적인 생활하던 가우디가 하루에 한 번씩 거리를 나서는데

 이유는 고질적인 류머티즘으로 운동하기 위하여 산책했다고 합니다.

 

 

오후 5시 반이면 가우디는 같은 코스로 근처 교회까지 걸어갔다. 오는데

1926년 오후 5시 반 성당에서 나와 늘 하던 산책에 나서고

6시쯤 바이렌 거리에 도착 길을 건너기 위해 걸음을 멈추었고

이 거리는 붉은 십자가라고 하는 폭이 넓은 거리였다고 합니다.

 

 운명이 거기까지였는지 그만 전차에 치이게 되는 사고가 났다고 합니다.

당시 경찰의 보고서에 기록된 것은 가우디의 이름이 언급되어있었으나

 사람을 친 운전자도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잡았던 택시운전사도 

다 가우디를 부랑자라고 생각하여 

가우디를 병원으로 옮기는 일을 외면 해버려 

가우디는 사고 직후 오랫동안 거리에 방치되어야만 했다고 합니다.

참 슬픈 일입니다.

 

 

 

규칙적인 생활 하는 가우디가 돌아오지 않

그때 교회 관련 사제에게 알리게 되고 급기야 택시를 불러 주변 병원을 돌아다니며

 부상자나 사망자가 있는지 수소문하던 중 

자정이 다되어 중태에 빠진 가우디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우디는 성체 세례를 받을 것인지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고 합니다.

가우디는 주께로 돌아가야 함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매우 심한 중상으로 고통스러웠을 가우디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라는

작은 소리를 끝으로 신실한 가우디의 생이 마무리고 

74년의 일생을 마치고 그리스도께로 돌아갔습니다.

 

 

죽기 전 두 가지 유언을 남겼다는데

자신의 전 재산을 성가족성당에 기부한다는 것과 

장례행렬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소소한 장례를 원했지만. 가우디를 사랑하는 사람은

 바르셀로나를 울릴 만큼 성대하게 가우디의 마지막 장례를 치렀다고 합니다.

 

성가족성당 지하납골당에 묻힌 가우디

성직자가 아닌데도 진정한 수도자로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

 가우디는 그렇게 떠났고, 가우디의 성당 설계도면은 비록 사라졌으나

그의 정신은 살아있어 가우디 뒤를 이어

 믿음의 건축가들이 지금도 성당을 짓고 있어 

가우디 사후 100년이 되는 2026년에 완공을 목표로 짓고 있다고 합니다.

 

 

 

 

세상 살며 신의 특별함을 입지 않고는 자신을 버리고 살기 어렵습니다.

신의 은혜가 아니면 인간의 욕심을 버리기 불가능니다.

 

인생을 자신이 살아가며 결정하고 이루며 사는 것 같으나 

살아보니 뒤돌아보니 신의 은혜입니다.

 

신께서 걸어가라 하신길을 걸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남보다 조금 많다고 높다고 교만한 것도 부질없

남보다 못하다고 해서 불평할 것도 아님에도

 끊임없이 밀려드는 유혹을 벗어날 수 없는 연약한 심지를 가진 인간입니다. 

 

희망 없으므로 끝낼 인생,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희망 있으로 달려가다가

처음 왔던 그대로 두 손 펼친 채로 빈손으로 돌아가나 봅니다.

 

 

 

 

성당이 지어진 것 중에서 

가우디와는 다른 건축가가 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른쪽 어두운 부분이 건축물은 가우디가 만들었던 부분이고

왼쪽 밝은 부분은 현재 지어지는 부분이라고 합니다.

 

 

 

 

 

 

윙윙대는 기계음 소리가 끊이지 않고

복잡함 가운데 한편에서는 공사 중이라 금지된 곳도 잇고

 한편에서는 그런데도 개의치 않고

믿음의 선진들의 작은 고백으로 지어졌을 성당을 돌아봅니다

 

비록 타 종교인이라 할지라도 자신도 모르게 압당하듯 

경건함 가운데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발걸음이

 꼭 참회하는 마음으로 걸음을 떼어놓는 듯합니다.

많은 사람이 관람하게 되어 차례대로 줄을 서서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조급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믿음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자신의 믿음을 굳게 하는 기회로 삼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이 놀라운 장관을 보며 할 말을 잊었을지도 모릅니다.

 
     

 

위의 사진처럼 지어질 2026년 그때면 나는 70이 될 나이라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일이라

만일 다시 볼 수 없다 해도 아쉬움이 없을 것은 후일 완공된 이곳 성가족성당에서 

또 다른 많은 사람이 신의 은총을 느낄 수 있기에 그날을 기다립니다.

아름다운 에스파냐 

아디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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