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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에스파냐

아름다운 에스파냐 ( 플라멩코 )

by 배움ing 2014. 8. 17.

 

 

 

 

 

플라멩코

잔잔한 기타의 반주 속에

청량한 음성으로 마치 신을 부르듯이 부르는 노래와

서서히 나아가 발걸음 구두 소리에 맞추어 춤을 시작하는 플라멩코

무용수들의 깊고도 깊은 애수를 떠올리며

모든 관중의 마음을 촉촉이 젖어들게 하는 플라멩코 ,

관중의 사로잡아 멋진 몸놀림과 우아함으로 보여주는 그것이

 어느 순간

신께 드리는 하나의 의식으로까지 여길 뻔합니다.

플라멩코 하면 떠오르는 건 저는

 청초한 모습과 애수에 찬 목소리의 무용수가 먼저 떠오릅니다.

어쩌면 세상살이 인간의 고뇌를

대신 표현해주며 달래주는 듯한 플라멩코라는 생각입니다.

 

 사진이 잘 안찍혀서 ㅠㅠ

 

 

 플라멩코의 유래는 확실치 않지만 

유럽을 정처 없이 떠돌며 가는 곳마다

심한 차별을 받으며 살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유럽 어느 곳에서는 집시들이 우물에 독을 풀어 넣었다든지

가축에게 독을 먹도록 했다는 등 아이를 유괴했다는 등

심지어 사람고기를 먹는다는 등의 말이 있어

집시가 어디서든 정착하려 해도

국외추방이나 모아둔 재산도 몰수해버리는 위험이 항상 따랐다고 합니다.

정처없는 유랑민족 그에 따라 플라멩코로 집시들의 한과 설움을 담아

 춤으로 표현해낸 것이 플라멩코라고도 합니다.

춤을 추는 이와 기타리스트와 무언의 대화로

 

춤을 추는데

 

남성의 묵직함을 때로는 힘차고

강렬한 멋진 남성미를 보여주는 플라멩코, 

무용수와 연주자의 노래와 박수 춤을 이용하여

 서로의 호흡이 맞추어 지는듯합니다.

 

춤을 추는 사이 서로가 바라보며

 손가락을 튕기며 춤을 추어 나가는데

무용수와 연주자 모두의 행위예술은

 인간의 감추어진 삶을 노래하며 춤을 추는듯합니다.

그때그때의 마음을 표현하겠지만

아마 플라멩코에 몰입되어 개인의 심취한 그대로 표현하여

모든 동작을 해나가리라 여깁니다.

개인이 배운다 해도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감정이입이 제대로 되지 않을 거 같은데

 신 들려 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고 보여주니까

  관대한 춤이라고 말 한답니다.

 

스페인 관광의 하이라이트라는데

동유럽에서는 오래전 집시를 귀족에게 맡겨져

귀족에게 세금을 내는 대신 보호를 받았다고 합니다.

 헝가리는 1871년까지 루마니아는 1866년까지 집시를

 노예로 삼았다고 합니다.

 

19세기 후반 이후에는 집시는

자신들의 왕조를 만들고 왕위에 오른 자도 있었는데

문제는 영토를 가질 수 없고 집시들 사이에서 분란이 끊이지 않아

오래가지 못하고 흐지부지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비행기 타고 가서 찍은건데 ㅠㅠ

 

 

집시의 왕이 소집하는 전체회의에서

학교를 세워 달라고 요구했지만,

영향력이 없어 실현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집시는 아니지만,

이들의 상황을 1933년에 동유럽의 집시를

폴리네시아(많은 섬)로 이주시켜줄 것을 국제연맹에 제기했지만

실현되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사진이 잘 안찍혀서 ㅠㅠ

 

  문제는 영토를 가질 수 없고 집시들 사이에서 분란이 끊이지 않아

오래가지 못하고 흐지부지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집시는 혈족끼리의 단합은 잘되는 것을 기반으로

 한 부족이 넓은 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부족은 장년 남자를 수장으로 선출하고

수장은 여성 지도자의 협조를 받으며

 부족 간의 생활 전반적인 부분을 규제한다고 합니다.

결혼식은 수장의 주관으로 치러지고

 도둑과 금기사항. 거짓말 등을 어겼을 때는

 수장을 포함한 장로에 의해 다스림을 받는다고 합니다.

와 ㅡ 지금이 2천 년하고 14년인데

이 지구에 북한 말고 아직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없는 일이 많군요.

 

다시 갈 수 없어서 걍 올림

 

 유랑할 수밖에 없다는 건 서글픈 일입니다.

정녕

인간의 자존감을 잃어버리고 찾을 수는 없는지요.

오랜 세월이 지나서라도 집시라는 단어가

옛말로 들려지는 그런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결혼은 집시끼리 해야 하고 서로 다른 가족의

 사촌 오누이끼리 결혼을 한다고 하며 신붓값을 요구한다는군요.

흑.ㅡㅡ. 흑 아직도 이런 세상

체계적인 종교는 없지만, 사후세계를 믿으며

 신령스러운 죽은 사람 영혼의 존재를 믿고

죽은 사람의 새끼손가락을 자르고

생전에 아끼던 물건과 함께 장사 지낸다고 합니다.

여성 개 고양이는 부정한 것으로 보며

이런 일이 ㅠㅠㅠ 나쁜 

아직도 유랑생활할 때는 포장마차나 텐트 움막집을 사용한다는데

선진국이라서 그런지 미국에서는 자동차를 사용하기도 한다는군요.

동유럽에 있는 여러 나라는 집시들을 사람다운 삶으로 정착시키려고

집과 직업 학교를 짓는 등으로 많은 노력을 하지만

집시들의 호응이 없어 많은 성과는 얻지 못한다고 합니다.

집시의 생업은 사는 나라 지방에 따라 다르다고 합니다. 

 주로 대장장이 주물공 조련사 목재나 가축 부분의 업으로 살고 있지만

 때론 개중에는 마술사. 점쟁이 악사도 있고

정착한 집시는 농업 등 육체적인 노동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집시는 특별한 기술이 없고 밑천에 사용할 금전도 없어 가난하게 살아가고

학교에 가지 못해 문맹이 많다고 합니다.

옷은 그들의 풍습을 따르고 전통 민속 옷은 없다고 합니다.

전해 내려오는 실을 뽑아내거나 

짜는 기술도 없고 먹는 것은 구운 치킨과 고습도치의 고기를 즐겨 먹고

술을 좋아하며 모든 사람이 담배를 즐기는 집시의 삶 흑흑

 

혼령이 춤 추는듯 ㅠㅠ

 

우리말에 팔자라는 말이 있는데

오래전 서울역인가 지하철 노숙인에 대한 프로젝트를 어느 방송에서 했는데

오랫동안 노숙의 삶을 살아가던 노숙인 그의 삶을 변화시키려고

집도 얻어주고 직장도 주어서 말쑥하니 일하며

제대로 일반인처럼 살게 하려

 한 사람을 그렇게 살도록 갖추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몇 개월 뒤 그 사람을 찾아보니 그 사람은 양복도 직장도 벗어버리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구걸하며 소주 사 먹는 것을 즐거워하는

 예전 노숙자로 돌아가 버렸다고 합니다.

삶을 바꾸어 살게 하려고 기본적인 것을 마련해주어도

 본인이 싫다며 벗어던진 그 노숙인이

어떤 점에서는 왜라는 물음을 할 수 있겠지만 참 그렇습니다.

인간의 삶이 그렇다고 무조건 잘사는 것만이

최고의 인생을 사는 거라 할 수 없지만,

그래서 옛말에 거지도 팔자라는 말을 들었던 게 생각나는군요.

 

아깝다 내 사진

 

 집시 음악은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발달했다지만,

더 오래전 인도 아랍 그레고리안 성가. 등을 통해 전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는군요.

플라멩코에서 빠트릴 수 없는 한가지가 있는데

안달루시아 지방에 들어온 집시 ( 히타노 )들이

지금까지 자신들이 플라멩코를 계승해왔다고 자부한답니다.

집시가 이집트에서 왔다고 하여

이집티안 이 변하여 집시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하는데그건 불확실하다고 합니다.

언어를 놓고 볼 때는 인도 서북부 언어와 비슷하여

인도 한 지방 에서 건너온 민족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플라멩코는 안달루시아 얫음악과 집시가 가지고 온 음악이

어울려져 현재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집시 고유의 음악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집시라 불리는 사람은 유럽 각지마다 다르게 불리면서 살고 있다는군요.

만일 플라멩코가 집시 고유의 것이라면

 프랑스. 유고. 영국. 루마니아. 헝가리 등에서 비슷한 예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스페인 이외 다른 지방에 사는 집시를 보면

 점쟁이 고물상, 철공소 등의 직업에 종사하고 있거나

곡예사 춤 노래를 하는 예능인으로

많은 가족이 삶을 영위해가고 있다고 합니다.

집시의 인생도 그 사람만의 주어진 길이면 할 수 없는 거라 여겨지지만

오늘은 비록 손가락질 받을 수 있는 집시라 해도

후일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

이 지구 위에 집시도 평범한 세상, 평범한 삶을 살아갔으면 ,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쩌면 지금 그들은 자신의 삶이

 가장 행복하다고 여길 줄 모르지만 말입니다.

집시의 행복한 오늘과 내일을 빕니다.

 

사진이 엉망 이지만 할 말이 많아 올림 ㅠㅠ 

 

 

블로그 가르쳐준 딸에게 고마움을 더욱 느낍니다.

더구나 우리 집 식구 중에 제가 제일 좋은 노트북을 차지하고 있고,

DSLR 카메라도 장악하고 있는 그런 나 자신에게

피식 웃음 지을 때도 있습니다.

평생을 통틀어 미래의 시간을 더하여도 최고의 선물인 것 같아

다시금 고마워집니다.

사랑하는 딸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