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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새로움의 유혹 

 인간의 삶과 마음도 타락의 길로 빠져감을 안타까워하던 그때, 

마음과 삶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신의 집뿐이라는 어느 출판업자의 믿음에 찬 확신에서

 1866년에 처음 계획되었다고 합니다.

 

 가족이 모여서 기도할 수 있는 곳으로 계획한 곳

 성가족 성당건축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성당의 중심점 또한 주인 되시는 하나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중심이며 육신의 가족 마리아와 요셉을 일컬어

 

 성 가족이라 이름한 성당이라고 합니다.

 

 

 

 

 

이 내용은 성서에 나오는 주기도문 중 한 부분의 기도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옵소서 쓰인 한글도 보입니다.

 

이 단어는 주기도문에 나오는 기도인데 인간에게 꼭 필요한 기도입니다.

 한 번에 많은 양식을 주옵소서 가 아닌 일용한 양식을 기도하는 문구에서

 

인간이 사는 동안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단번에 그치지 않고 

 

 순간마다 필요함을 말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세계 모든 나라 언어로 쓰인 기도문이 지금은 동판이 아니지만 

후일 동판으로 새겨질 거라고 합니다.

 

 

 

 

 

 

1,492개의 파이프 오르간과 고난의 예수님,

성당 중앙 예배당에는 1,492개의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고난의 예수그리스도를 보면서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공평하신 하나님은 인간 앞에 어두운 덫을 놓지 않고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비록 마음으로만 생각으로만 안다 해도  그 부분은 감히 사람이 평가할 수 없는 신과의 일대일의 관계라서
뭐라 불필요한 논쟁할 필요가 없는 사랑입니다.
타인을 비난하기보다 자신의 믿음을 지키며 타인이 손을 내밀어 청할 때 잡아주는 신자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유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켰노라 장담할 수 없는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52개의 기둥은 나무 모양으로 

 

숲을 표현하는 천장을 받쳐주고 있다는데

 

여러 기둥 중 (아랫줄 작은 사진) 붉은색 기둥

 

 중간에 있는 원형 그림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을 상징하는 

 

사자. 사람. 황소. 독수리의 그림이라고 합니다. 

 

 

 

 

 

 

 

신비함을 느끼게 하는 성당 내부 구조물은

 

 아침부터 저녁 또는 흐린 날에도  

 

각색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빛이 들어오는 각도에 따라 스테인드글라스에 반사되어 가지각색으로 비쳐

 

 보는 이 마음을 잔잔한 예술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비록 전문 지식의 부재로 구조물의 담겨진 뜻과 의미를 모른다 해도 

 

인간의 본성대로 느끼는 감동은 환상적인 부분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가우디의 죽음은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 생각해도 안타까운 죽음입니다.

산책하던 중 전차 사고로 중태에 빠졌지만 

부랑자로 오해하여 가까스로 극빈자를 위한 구호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나중 가우디를 찾아낸 친구는 다른 병원으로 옮기려 하나 

가우디는 나는 여기 가난한 사람과 함께 있겠다고 하며

 친구의 제의를 거절했고 

사흘 후 가우디는 숨을 거두고

 사랑하는 예수님께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성경에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듯이 

가우디가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교회는 

가장 성스럽고 아름다운 교회에 많은 사람의 기도가 끊이지 않는 

그런 교회를 지어 하나님께 드리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곳을 설계한 가우디의 정신세계는 감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가우디는 성당 앞면에 세워질 작품을 준비하면서 

시체에 석고를 발라 본을 뜨거나

병원을 자주 들러 죽은 환자가 있지 않나 확인하러 다녔고

인체 구석구석의 변화와 관찰을 했기에 비난도 받았겠지요.

어린아이 시체에서 석고 본을 떠놓은 것을 작업실 천장에 보관하여

영안실 분위기가 나는 작업실이었다고 합니다.

 

 

 

 

 

 

또 닭과 칠면조를 마취시켜 마취가 풀리기 전 신속히 본을 뜨기도 했고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인체에 대해 많이 알아야 했으니

정상이 아니라는 오해도 비난과 함께 받았을 거라 여깁니다.

근육분석을 위해 무덤까지 팠다고 하는 가우디

 

 성가족성당이 인간의 겉과 내부장기 혈관 등 

 

그 이상을 모델화하여 만들어졌다 해도

 

가우디의 신앙과 관련하여 생각건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존재임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는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가우디가 죽고 난 후 미완성인 성당을 놓고 논쟁이 일었다고 합니다.

 

미완성인 성당을 계속해서 지을 것인가 

 

아니면 모차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처럼 미완인 상태로 둘 것인가를 놓고

 

불꽃 튀는 논쟁 끝에 현재도 지어지고 있는 성당은

 

 과거에는 모금한 헌금으로 지었지만,

 

지금은 성당을 찾는 관광수입으로 지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기도 응답의 기둥이라고 합니다.

 

가시면 꼭 손을 얹고 눈 감고

 

 마음 깊은 곳에서 원하는 기도를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응답의 기둥이라고 합니다.

 

 많은 성도가 손을 얹고 기도했을 때 

 

개인의 소원보다 더 큰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믿음의 기도가

 

 더 많았을 것 같기에 꼭 손을 얹고 기도하고 돌아오세요.

 

 

 

 

 

 

성당 평면도라고 합니다.

 

세밀하게 모른다 해도 보는 순간 사람의 형상과 같습니다.

 

예수님 희생과 십자가가 생각나는 평면도입니다.

 

 

단체로 온 여행이라 시간 제한적인 면도 있어 아쉬움이 많습니다.

지하성당도 입구만 갔다 나왔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성당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2유로입니다. 

패키지여행으로 시간이 부족하여 오르지 못한 것입니다.

내려올 때는 나선형 계단으로 걸어 내려오는 곳이라고 하니까 더 아쉬움이 가득합니다.

지금도 체력이 부족한데,

후일에는 올라간다 해도 내려올 힘이 될지,

그래서 더욱 아쉬움이 많습니다.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곳에 있는 성당이 아닙니다.

 

복잡한 도시의 일상이 이어지는 곳에 우뚝 서 있고 

 

지금도 지어지고 있는 성가족성당입니다.

 

엄숙함을 요구하는 곳에 지어지지 않았지만,

 

완전하지 못하여 

 

반복된 실수와 잘못이 더해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이 살아가는 중심에 

 

위로와 격려의 선물로 지어진 것 같습니다.

 

스스로 이르기를 난 인간이야 그래서 할 수 없어 

 

난 신이 아니니 그릇된 판단과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자포자기할지 몰라

 

 인간의 삶의 중심에 신께서 더 가까이하셔 

 

 위로와 돌이킴과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려고

 

여기에 만들게 하신 

 

하나님 사랑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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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한복판 성가족성당 가는 길입니다.

그동안은 펼쳐진 대자연을 벗 삼아 여행했는데 

 

여기 천재건축가가 잠들고 있는 곳은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 옆에 위치하여 혼잡하고 

 

자동차 소음과 성당 공사 소리가 더해져 경건함을 찾기에는 

다소 많이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성당에 도착하여 정문을 들어서자 무언가에 압도당한 듯 

묵묵히 줄지어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리다 들어갑니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마음 한편에

 신께로 향하는 경건함이 간직되어 있는듯합니다.

 

바르셀로나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입니다.

 

 

 

 

 

 

가우디의 정신!

이 성당에 대하여 알고자 하기 전 먼저 

 

카탈루냐 정신에 대하여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정신세계와 뼛속까지 심어진 카탈루냐정신이 

가우디의 건축의 세계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카탈루냐인임을 자랑스러워했던 천재 건축가는

카탈루냐정신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어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격이라서

건축작업을 대충 대충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카탈루냐 정신이란= 스페인은 역사적으로

(바스케. 카탈루냐. 카스티야. 갈리시아) 

각각의 독립성을 가진 국가로 나뉘어 있었고

그중 지역성이 강한 카탈루냐와 카스티야의 갈등은 심했다고 합니다. 

 

 

 

 

 

항구도시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공업에 종사하던 하층민이 거주하던 카탈루냐와 카스티야는

 

신분. 지리. 사회적으로 추구하는 정책도 달라 잦은 충돌이 있었다고 하는데,

 

20세기 초 정권을 등에 업은 카스티야가 국가정책의 주도권을 행사하면서

 

 두 지역 간의 관계가 나빠지고 힘이 약한 카탈루냐는 늘 희생자였다고 합니다.

 

급기야 고유언어와 문화를 가진 카탈루냐민족의 독립성은

 

 점차 빛을 잃어 정치적 상황은 복잡해져 가고 위기를 맞게 됩니다.

 

결국, 스페인은 카탈루냐어 교육을 금지하고

 

 민족의 독립성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문화적 자긍심이 강한 카탈루냐인은 사라지는 언어와 문화를 되살리고자

 

(레나센샤) 카탈루냐 문예부흥운동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유문화와 옛 영광을 찾고자 하는 운동은

 

지식인 일부로 시작했지만, 예술 전 분야로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건축분야도 중세시대 자기 민족과 문화에 대한 향수를

 

 성당건축을 통한 고딕 복고양식으로 표현했고 

 

여러 분야에서 정체성 부활을 위해 중세를 재조명하고

 

변화와 혁신을 이루려는 운동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레나센샤 운동을 통해 찾고자 하는 고유 정체성에는

 

 가족애. 자연풍경. 가정. 종교 중 종교는 가장 중요한 중심점이었고

 

이 운동은 가우디에게 수공예기술에 대한 존경심과 

 

예술의 정직성을 깨우치게 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고향이 가진 대자연과 건축유적에 새겨진 카탈루냐정신에

 

 남다른 애정을 가졌던 가우디는 많은 영향을 받았고 

 

가우디의 작품에서 고유문화와 종교적인 색채는 작품 속에서도 쉽게 발견되고

 

특히 성가족성당은 카탈루냐만의 독창성을 표현하고 있는 건축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가우디는 건축 분야에 나무나 철골 같은 보강 없

 카탈루냐식 독특한 구조체로 재탄생시켰다고 합니다.

 

급변하는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찾아 몸부림치는 사회 분위기 속에 

뜨거운 열정을 안고 작품세계에 몰입하던 건축가 가우디는 

 

자신이 갖춘 능력과 시간을 부귀영화를 위해 사용하지 않고 

오직 자기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하는 데 온전히 바친

진정한 민족주의자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카탈루냐 민족은 가우디에게는 절대적인 존재였다고 합니다.

 온 세상에 카탈루냐를 알리고 빛낸 건축가 가우디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신 하나님의 일꾼이었던 것 같습니다.

 

 

 

 

 

운명의 사람 가우디!!!

순수 합리적인 건축이 절정을 이루던 시대에

 

 자유로운 곡선의 아름다움을 고집한 가우디의 건축은 

상상할 수 없는 뛰어난 것이었고 모든 관심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가우디의 건축작품을 폄하하는 사람 중에 

동물농장을 쓴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성가족성당을 놓고

 

 가장 혐오스러운 건물이며 혁명 기간에 손상을 입지 않은 점은

 많은 사람은 예술적 가치 때문이었다고 말하나 

 

 

자기 생각엔 무정부주의자들이 폭격할 기회가 있음에도 

기분을 망치지 않으려고 이 흉물스러운 건물을 피해 갔다는 표현을 했다고 합니다.

 

가우디에 대하여 여러 비난이 함께하는 것은 

가우디 개인의 삶. 축관. 개인사적인 일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우디의 친구나 제자에 의해 기록되었던 

 

가우디 어록이나 건축스케치마저 

1936년 7월 무정부주의자들이 파손시킴으로

 

 가우디의 인간적인 면과 생각들은 알 수 없는 베일에 쌓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가우디는 심한 비난을 받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다양한 작품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영감을 불어넣었다고 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의 고정관념은 깨트리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 분야가 어떻든지 기존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 하며

건축분야에 새로운 독창적인 방법을 놓고

 

 자신이 하지 않은 것에는 배타적인 점도 가미되어 많은 질시도 받았을 것 같습니다.

 

그 아무리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라 해도 인간은 질투와 시샘의 유혹을 

 

넘어서기 어려운 약한 존재이기에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생전에 가우디는 말이 없고 허름한 차림새에 

이상한 실험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괴짜라는 꼬리표를 항상 달고 살았다는데.

그러한 가우디의 성격을 묘사하는 말 중에는 

 

귀족적이면서 천박한 멋쟁이이자 방랑자. 

박식하지만 오락가락하는 자.

기지가 넘치지만 재미없는 사람. 등 

 

가우디의 행동으로 인해 왜곡되게 표현하고 바라봤겠지요.

일반 사람의 생각과 눈으로 

가우디의 예술 세계를 헤아릴 수 없었겠지요,

 

그 어찌 평범한 사람의 마음으로 신께로 드려지는 

가우디 믿음의 고백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평범에서 나오는 부족함의 표현이

어쩌면 가우디 작품의 천재성에 대한 부러움에서 일어난 시기였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가우디의 친구나 동료 그리고 가족이 남긴 기록이 있다는데

 

외부에서 바라본 가우디는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연과 민족을 사랑한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가진 으며

 비록 자신은 가정을 가질 수 없지만

그 대신 친구의 아들을 자기 아들처럼 여길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다고 합니다.

믿음의 사람 가우디는 살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자

 

일생을 바친 신이 보낸 건축가이며 

그러하기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건축의 형태를 만드는 마술사였다고 합니다.

 

 

 

 

43년 동안 온 힘을 기울여 성당을 건축하며 

가우디는 신께서 빨리 건축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다고 합니다.

요즘 건축 신속하게 지어집니다.

 

가우디의 성당건축은 일반적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의 귀한 예물이었니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 가우디는 건축하는 동안 내내

 작업장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규칙적인 생활하던 가우디가 하루에 한 번씩 거리를 나서는데

 이유는 고질적인 류머티즘으로 운동하기 위하여 산책했다고 합니다.

 

 

오후 5시 반이면 가우디는 같은 코스로 근처 교회까지 걸어갔다. 오는데

1926년 오후 5시 반 성당에서 나와 늘 하던 산책에 나서고

6시쯤 바이렌 거리에 도착 길을 건너기 위해 걸음을 멈추었고

이 거리는 붉은 십자가라고 하는 폭이 넓은 거리였다고 합니다.

 

 운명이 거기까지였는지 그만 전차에 치이게 되는 사고가 났다고 합니다.

당시 경찰의 보고서에 기록된 것은 가우디의 이름이 언급되어있었으나

 사람을 친 운전자도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잡았던 택시운전사도 

다 가우디를 부랑자라고 생각하여 

가우디를 병원으로 옮기는 일을 외면 해버려 

가우디는 사고 직후 오랫동안 거리에 방치되어야만 했다고 합니다.

참 슬픈 일입니다.

 

 

 

규칙적인 생활 하는 가우디가 돌아오지 않

그때 교회 관련 사제에게 알리게 되고 급기야 택시를 불러 주변 병원을 돌아다니며

 부상자나 사망자가 있는지 수소문하던 중 

자정이 다되어 중태에 빠진 가우디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우디는 성체 세례를 받을 것인지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고 합니다.

가우디는 주께로 돌아가야 함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매우 심한 중상으로 고통스러웠을 가우디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라는

작은 소리를 끝으로 신실한 가우디의 생이 마무리고 

74년의 일생을 마치고 그리스도께로 돌아갔습니다.

 

 

죽기 전 두 가지 유언을 남겼다는데

자신의 전 재산을 성가족성당에 기부한다는 것과 

장례행렬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소소한 장례를 원했지만. 가우디를 사랑하는 사람은

 바르셀로나를 울릴 만큼 성대하게 가우디의 마지막 장례를 치렀다고 합니다.

 

성가족성당 지하납골당에 묻힌 가우디

성직자가 아닌데도 진정한 수도자로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

 가우디는 그렇게 떠났고, 가우디의 성당 설계도면은 비록 사라졌으나

그의 정신은 살아있어 가우디 뒤를 이어

 믿음의 건축가들이 지금도 성당을 짓고 있어 

가우디 사후 100년이 되는 2026년에 완공을 목표로 짓고 있다고 합니다.

 

 

 

 

세상 살며 신의 특별함을 입지 않고는 자신을 버리고 살기 어렵습니다.

신의 은혜가 아니면 인간의 욕심을 버리기 불가능니다.

 

인생을 자신이 살아가며 결정하고 이루며 사는 것 같으나 

살아보니 뒤돌아보니 신의 은혜입니다.

 

신께서 걸어가라 하신길을 걸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남보다 조금 많다고 높다고 교만한 것도 부질없

남보다 못하다고 해서 불평할 것도 아님에도

 끊임없이 밀려드는 유혹을 벗어날 수 없는 연약한 심지를 가진 인간입니다. 

 

희망 없으므로 끝낼 인생,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희망 있으로 달려가다가

처음 왔던 그대로 두 손 펼친 채로 빈손으로 돌아가나 봅니다.

 

 

 

 

성당이 지어진 것 중에서 

가우디와는 다른 건축가가 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른쪽 어두운 부분이 건축물은 가우디가 만들었던 부분이고

왼쪽 밝은 부분은 현재 지어지는 부분이라고 합니다.

 

 

 

 

 

 

윙윙대는 기계음 소리가 끊이지 않고

복잡함 가운데 한편에서는 공사 중이라 금지된 곳도 잇고

 한편에서는 그런데도 개의치 않고

믿음의 선진들의 작은 고백으로 지어졌을 성당을 돌아봅니다

 

비록 타 종교인이라 할지라도 자신도 모르게 압당하듯 

경건함 가운데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발걸음이

 꼭 참회하는 마음으로 걸음을 떼어놓는 듯합니다.

많은 사람이 관람하게 되어 차례대로 줄을 서서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조급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믿음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자신의 믿음을 굳게 하는 기회로 삼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이 놀라운 장관을 보며 할 말을 잊었을지도 모릅니다.

 
     

 

위의 사진처럼 지어질 2026년 그때면 나는 70이 될 나이라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일이라

만일 다시 볼 수 없다 해도 아쉬움이 없을 것은 후일 완공된 이곳 성가족성당에서 

또 다른 많은 사람이 신의 은총을 느낄 수 있기에 그날을 기다립니다.

아름다운 에스파냐 

아디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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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시간이 지나 에스파냐 다녀온 지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나의 여행 기록을 미루다 숙제하듯 지난 시간 떠올려봅니다.

찌는 듯이 무더운 지금 날씨와 그때 바르셀로나 날씨를 비교하면

현재 우리나라 날씨가 더 덥고 습합니다.

 

그늘이 시원한 에스파냐는 유럽의 특징인지 자유로운 젊은이의 세상이기도 하지만

에스파냐인은 자신의 직업이 어떻든지 일에 매여 있다기보다는 일을 즐기듯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천재 건축가의 건축물이 세계인을 불러 모아 오늘도 많은 사람은 에스파냐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겠지요. 

 

 

버스는 굽이진 길을 돌아 그렇다고 산길은 아닙니다.

주택이 밀집한 곳을 돌고 돌아 언덕을 올라 도착한 곳,

그곳은 보는 사람마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곳입니다.

동화의 나라에서 봄 직한 건물이 있는 곳 구엘 공원에 도착했습니다.

 

 

 

 

가우디!

입구를 들어서니 여러 갈래 길이 있지만

구석구석 역사의 흔적이 지금도 숨 쉬는듯한 공원입니다.

카탈루냐 지방에 있는 바르셀로나는 

곧게 뻗어 있는 도로를 따라가면 지중해의 푸른 바다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백년대계를 바라보고 설계한 도로가 곧게 뻗어있고

 뿐만 아니라 에스파냐의 자랑인 천재건축가 가우디의 건축물이 곳곳에 있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지요,

 

 

그중 하나 

공원에 서면 멀리 보이는 지중해와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공원이 위치한 곳이 높다 보니 

버스가 힘들어하며 올라왔습니다.

여기저기 다녀도 우리나라 관광객이 많다지만, 

세계인이 찾는 공원입니다.

에스파냐 학생들이 현장학습 온 것 같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니 나이 60이 다 되는데도 

백설공주가 먼저 생각나는 곳입니다.

내 나이가 어때서 크크크

마음이 정말 동화 나라에 온 듯합니다.

어른을 어린이의 티없는 생각으로 만들 것 같습니다.

어린이에게 많은 꿈을 키울 것 같아 욕심납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답게 지어진 곳이 있었으면, 

 남의 나라이니 욕심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지만 

그래도 많이 욕심납니다.

 

 

 

 

걷고 걸어 공원입구에 들어서자 

동화 속 나라에나 있을듯한 예쁜 건물이 있어

창문을 열며 올라 하고 인사할 것 같습니다. 

인형이 사는 집, 백설공주의 집 같은 건물,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천재 건축가의 작품에 매료되어버립니다.

만지면 톡 하고 부서질 듯한 과자 나라에 온 듯한데.

가우디 특유의 건축양식인 모자이크를 형형색색의 타일로 만들어

꿈꾸게 하는 공원입니다.

 

 

 

 

입구에 들어서자 보이는 두 개의 건물.

하나는 경비실. 하나는 관리실로 쓰려고 지었던 건물이라는데

뾰족한 지붕이 신비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것 같습니다.

내부를 앙증스럽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쉽게 볼 수 없었습니다.

 

 

 

평소 그리스신화에 관심이 많은 구엘 백작의 요청으로 

신전을 연상케 하는 예술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해가 쏙 

신전건물 기둥의 특징은 도리스식,

*도리스식=(도리스 인들이 창시한 그리스 건축양식임)

*기둥이 굵고 주춧돌이 없고 기둥머리 장식이 간단하고 소박하나 

웅장한 느낌을 주는 건축양식, 

코린트의 아폴로 신전. 아테네의 파르테논신전. 

올림피아의 헤라 페르스 신전이 대표적인 건축물이라고 함,

*도리스인 = 고대 그리스를 지배하던 종족,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이 저 계단으로 내려올 것 같은 분위기,

생각의 날개가 돋게 하는 건축물입니다. 

요정이 뽀로롱 하고 나타날 것만 같고

신화 속 인물을 만날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합니다.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인공 석굴을 보는 순간

 왠지 불안한 느낌으로 바라보지만 감탄하게 되는 구조물입니다.

모든 건축물 하나하나에 가득 담긴 정성을 느끼게 됩니다.

 

 

 

 

꾸불꾸불한 길과 곡선으로 만들어진 구조물을 보면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는데

나이를 잊게 하는 공원입니다.

여기저기 돌들로 이루어진 놀라움의 장소입니다.

 

 

 

 

이 돌들만 봐도 이곳이 얼마만큼 돌이 많았는지 짐작이 됩니다.

하얀 머리카락이 멋진 현지 가이드님이

이곳이 돌이 많아 작업하기가 얼마나 어려웠겠느냐며 

여기서 캐낸 돌로 만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하나같이 모두 우-와 탄성 합니다.

버려진 땅이라고 할 만큼의 열악한 이곳을 이렇게 멋진 작품으로 만들고 

백 년이 넘어선 이 시대에 놀라움을 선사하고 있는 건축 구조물,

천재 건축가의 작품세계에 놀라고 재능에 감탄을 넘어

 신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형의 특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 만들어진 인공석굴은

어느 것 하나 단조로움을 느낄 수 없는 오묘한 작품입니다.야외 전시장인듯합니다.

아니 이 공원 전체가 전시장입니다.이 특혜를 누리는 바르셀로나 시민은

구엘 공원을 무척 아낀다고 하더군요.저라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신전처럼 지어진 곳

지붕에는 유럽의 특징인 넓은 광장이 있습니다.

광장 둘레는 벤치를 만들어 놓았는데 

이 벤치 하나하나와 둘레까지 형형색색의 타일로 모자이크하여

 화려한 가운데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오랜 세월의 풍상에도 변함없이 존재하고 있으나 전혀 볼품없어 보이지 않고

오히려 보는 사람이 앉고 싶어하는 마음과 앉았을 때의 편안함이 더해져

휴식의 최고의 장소임이 확실합니다.

 

 

 

 

단색으로 만든 구조물도 세심한 정성이 담겨 

 작품전시회에 온 듯 착각할 아름다운 솜씨를 뽐내고 있습니다.

보는 사람이 신비감을 일으키고 생각하도록 하는 듯

어떤 것은 반쯤 기울어져 위태롭기도 하고

 어떤 거는 과자나 초콜릿 같아 손으로 똑 떼면 떼어질 듯한

환상 속의 구조물입니다.

 

 

 

  바르셀로나 시내 외곽 언덕에 있는 공원은

구엘 백작의 경제적인 후원을 바탕으로 설계 건축되었다는데

처음 계획은 가장 이상적인 전원도시를 만들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평소 영국의 전원도시를 동경하던 구엘 백작은

가우디를 통해 60여 가구 이상의 영국풍의 아름다운 전원주택을 지어

 에스파냐 부유층에게 분양할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당시로는 새로운 발상이었지만 

실패할 수밖에 없는 부동산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이 공원의 땅은 돌이 많은 곳인 데다 

경사진 비탈길이 많아 작업하는데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하는데

그런데도 가우디는 자연스러움을 살리기 위해

 땅을 고르게 하는 것도 반대했다고 합니다.

 

 

 

 

1900~1914년까지 건축은 계속되었지만 

자금난이 겹치면서 몇 개의 건물과 광장. 유명 벤치를 남기고

 중단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만일 가우디와 구엘 백작의 뜻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어 분양되었다면 

과연 어떤 아름다운 전원주택이 지어졌을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미완성으로 중단된 공원이 

이렇게 아름답게 지어졌으니 말입니다.

1차 세계대전이 일난 시기여서인지 

자금난을 견디다 못해 중단된 구엘 공원을 

1922년 바르셀로나 시의회가 백작소유의 이 땅을 사게 되면서 

개인소유가 아닌 바르셀로나 시민의 공원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의 큰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 덕에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걸작품으로 기억하게 되고

 바르셀로나 시민의 휴식처가 되고 

이곳을 찾는 세계인의 꿈과 동심을 일깨워주는

 꿈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아차 하면 부유한 사람의 소유물로 남을뻔했는데

 많은 사람의 휴식처로 남게 되어 다행입니다.

 

 

 

 

가우디는 직선보다 주로 곡선으로 설계했으며

타일 장식 돌까지 모자이크기법을 적용 건축하여 화려함 가운데

보면 볼수록 시선을 사로잡는 묘한 마력이 있습니다.

딱히 예술에 대하여 문외한 일지라도 말입니다.

나선형의 구조물도 깨진 도기조각으로 장식했는데도

 오히려 화려해 보입니다.

 

 

 

성가족성당으로 가야야 할 시간이 되어

아쉬움을 남기고 시간에 쫓겨 돌아옵니다.

정말 아쉬운 것은 이곳에 가우디 박물관이 있다고 합니다.

과거 가우디가 살았었고 사용하던 침대 책상 등 가우디의 유품이 전시되고 있고 

직접 디자인한 독특한 가구들이 전시되고 있다는데

저는 핵심을 보지 않고 나오는 것 같습니다.

구엘 공원 가시는 분은 꼭 박물관에 가서 천재 건축가의 예술의 흔적을 

보고 느끼고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아름다운 에스파냐 구엘 공원 아디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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