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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에스파냐 ( 바르셀로나 성가족 성당 내부 )

배움ing 2015. 8. 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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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새로움의 유혹 

 인간의 삶과 마음도 타락의 길로 빠져감을 안타까워하던 그때, 

마음과 삶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신의 집뿐이라는 어느 출판업자의 믿음에 찬 확신에서

 1866년에 처음 계획되었다고 합니다.

 

 가족이 모여서 기도할 수 있는 곳으로 계획한 곳

 성가족 성당건축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성당의 중심점 또한 주인 되시는 하나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중심이며 육신의 가족 마리아와 요셉을 일컬어

 

 성 가족이라 이름한 성당이라고 합니다.

 

 

 

 

 

이 내용은 성서에 나오는 주기도문 중 한 부분의 기도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옵소서 쓰인 한글도 보입니다.

 

이 단어는 주기도문에 나오는 기도인데 인간에게 꼭 필요한 기도입니다.

 한 번에 많은 양식을 주옵소서 가 아닌 일용한 양식을 기도하는 문구에서

 

인간이 사는 동안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단번에 그치지 않고 

 

 순간마다 필요함을 말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세계 모든 나라 언어로 쓰인 기도문이 지금은 동판이 아니지만 

후일 동판으로 새겨질 거라고 합니다.

 

 

 

 

 

 

1,492개의 파이프 오르간과 고난의 예수님,

성당 중앙 예배당에는 1,492개의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고난의 예수그리스도를 보면서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공평하신 하나님은 인간 앞에 어두운 덫을 놓지 않고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비록 마음으로만 생각으로만 안다 해도  그 부분은 감히 사람이 평가할 수 없는 신과의 일대일의 관계라서
뭐라 불필요한 논쟁할 필요가 없는 사랑입니다.
타인을 비난하기보다 자신의 믿음을 지키며 타인이 손을 내밀어 청할 때 잡아주는 신자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유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켰노라 장담할 수 없는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52개의 기둥은 나무 모양으로 

 

숲을 표현하는 천장을 받쳐주고 있다는데

 

여러 기둥 중 (아랫줄 작은 사진) 붉은색 기둥

 

 중간에 있는 원형 그림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을 상징하는 

 

사자. 사람. 황소. 독수리의 그림이라고 합니다. 

 

 

 

 

 

 

 

신비함을 느끼게 하는 성당 내부 구조물은

 

 아침부터 저녁 또는 흐린 날에도  

 

각색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빛이 들어오는 각도에 따라 스테인드글라스에 반사되어 가지각색으로 비쳐

 

 보는 이 마음을 잔잔한 예술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비록 전문 지식의 부재로 구조물의 담겨진 뜻과 의미를 모른다 해도 

 

인간의 본성대로 느끼는 감동은 환상적인 부분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가우디의 죽음은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 생각해도 안타까운 죽음입니다.

산책하던 중 전차 사고로 중태에 빠졌지만 

부랑자로 오해하여 가까스로 극빈자를 위한 구호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나중 가우디를 찾아낸 친구는 다른 병원으로 옮기려 하나 

가우디는 나는 여기 가난한 사람과 함께 있겠다고 하며

 친구의 제의를 거절했고 

사흘 후 가우디는 숨을 거두고

 사랑하는 예수님께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성경에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듯이 

가우디가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교회는 

가장 성스럽고 아름다운 교회에 많은 사람의 기도가 끊이지 않는 

그런 교회를 지어 하나님께 드리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곳을 설계한 가우디의 정신세계는 감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가우디는 성당 앞면에 세워질 작품을 준비하면서 

시체에 석고를 발라 본을 뜨거나

병원을 자주 들러 죽은 환자가 있지 않나 확인하러 다녔고

인체 구석구석의 변화와 관찰을 했기에 비난도 받았겠지요.

어린아이 시체에서 석고 본을 떠놓은 것을 작업실 천장에 보관하여

영안실 분위기가 나는 작업실이었다고 합니다.

 

 

 

 

 

 

또 닭과 칠면조를 마취시켜 마취가 풀리기 전 신속히 본을 뜨기도 했고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인체에 대해 많이 알아야 했으니

정상이 아니라는 오해도 비난과 함께 받았을 거라 여깁니다.

근육분석을 위해 무덤까지 팠다고 하는 가우디

 

 성가족성당이 인간의 겉과 내부장기 혈관 등 

 

그 이상을 모델화하여 만들어졌다 해도

 

가우디의 신앙과 관련하여 생각건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존재임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는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가우디가 죽고 난 후 미완성인 성당을 놓고 논쟁이 일었다고 합니다.

 

미완성인 성당을 계속해서 지을 것인가 

 

아니면 모차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처럼 미완인 상태로 둘 것인가를 놓고

 

불꽃 튀는 논쟁 끝에 현재도 지어지고 있는 성당은

 

 과거에는 모금한 헌금으로 지었지만,

 

지금은 성당을 찾는 관광수입으로 지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기도 응답의 기둥이라고 합니다.

 

가시면 꼭 손을 얹고 눈 감고

 

 마음 깊은 곳에서 원하는 기도를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응답의 기둥이라고 합니다.

 

 많은 성도가 손을 얹고 기도했을 때 

 

개인의 소원보다 더 큰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믿음의 기도가

 

 더 많았을 것 같기에 꼭 손을 얹고 기도하고 돌아오세요.

 

 

 

 

 

 

성당 평면도라고 합니다.

 

세밀하게 모른다 해도 보는 순간 사람의 형상과 같습니다.

 

예수님 희생과 십자가가 생각나는 평면도입니다.

 

 

단체로 온 여행이라 시간 제한적인 면도 있어 아쉬움이 많습니다.

지하성당도 입구만 갔다 나왔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성당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2유로입니다. 

패키지여행으로 시간이 부족하여 오르지 못한 것입니다.

내려올 때는 나선형 계단으로 걸어 내려오는 곳이라고 하니까 더 아쉬움이 가득합니다.

지금도 체력이 부족한데,

후일에는 올라간다 해도 내려올 힘이 될지,

그래서 더욱 아쉬움이 많습니다.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곳에 있는 성당이 아닙니다.

 

복잡한 도시의 일상이 이어지는 곳에 우뚝 서 있고 

 

지금도 지어지고 있는 성가족성당입니다.

 

엄숙함을 요구하는 곳에 지어지지 않았지만,

 

완전하지 못하여 

 

반복된 실수와 잘못이 더해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이 살아가는 중심에 

 

위로와 격려의 선물로 지어진 것 같습니다.

 

스스로 이르기를 난 인간이야 그래서 할 수 없어 

 

난 신이 아니니 그릇된 판단과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자포자기할지 몰라

 

 인간의 삶의 중심에 신께서 더 가까이하셔 

 

 위로와 돌이킴과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려고

 

여기에 만들게 하신 

 

하나님 사랑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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