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언제나 배움ing

강릉 여행 &( 민족의 자랑 오죽헌 ) 율곡 기념관 본문

솔향 강원도

강릉 여행 &( 민족의 자랑 오죽헌 ) 율곡 기념관

배움ing 2015. 7. 17. 06:00
반응형

 

 

 

 

 

 

그리움 가득 담아 바다와 소나무가 우거진 강원도 그리고 강릉에 그리움을 담아 보냅니다.

가뭄이 심하다는데,

서울지역은 아직 장마다운 비와 태풍다운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요 며칠은 간간이 비가 내려 열대야 기운을 잠재웠습니다.

그러나,

이젠 30도 넘는다는 이야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들리는 여름철입니다. 

예전에는 이처럼 불볕더위가 심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라는생각을 가끔 하지만

오래전이라 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시의 소음은 삶의 활력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그 소음 사이로 들리는 어린아이의 재잘거림이 평화로움을 느끼게 합니다.

자연의 조화로움이 갖추어진 곳 강릉이 그리워집니다.

***향토문헌 참고 옮겼어요.***

이곳은 율곡 기념관 입구입니다.

사진 촬영이 허락되지 않는 곳이라는 안내문이 있어 내부전시물은 마음에만 담고 나왔습니다.

율곡의 형제

첫째 아들=> 이선=과거시험 소과에 급제 진사가 된 후 한성부 남부 참봉으로 관직 마침,지금으로 치면 9급 공무원임,

첫째 딸=> 이 매창=충청도 관찰사의 아내 둘째 아들=> 이번

둘째 딸

셋째 아들=>율곡 이이

셋째딸

넷째아들 => 이우= 정 3품 군자감정, 군자감정은 군사 물자를 취급하는 관청,

군자감정 책임자로 국장급에 해당함

아들 넷 딸 셋 

자녀 중 율곡 이이가 정치적 학문적으로 출세하지 못했다면 화폐에 실릴 정도는 아니었을 거라고 합니다.

일곱 자녀 중 율곡 이이가 특출함,

1536년 년 출생 12월 26일

강릉 북평촌현 오죽헌 외가에서 아버지 이 원수와 어머니 신사임당의 셋째아들로 출생

1542년 7세

어머니 사임당에게 글을 배우며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을 스스로 깨우쳤다.

진 복창 전을 지었다. (이웃에 사는 진 복창이라는 사람에 관한 평가 )

1548년 13세

진사 초시에 합격하였다. 1551년 16세

어머니 사임당이 숨을 거두자 3년간 시묘하였으며 선비 행장을 지었다.

(어머니의 일생)

1555년 20세

강릉 외가로 돌아가 자경문=(스스로 경계하는글)을 지었다

1556년 21세

한성사 <한성부에서 실시한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하였다

율곡 선생 행장기

율곡 기념관 입구에 있습니다.

 1557년 22세

성주목사 노경린의 딸과 혼인하였다

1561년 26세

아버지 이원수가 숨을 거뒀다

1566년 31세

봄에 사간원 정연, 겨울에 이조 좌랑에 임명되었다.

1568년 33세 사헌부 지평에 임명되었다

1569년 34세

홍문관 교리에 임명되었다

자신의 정치관을 담은 동호 문답을 지어 선조에게 올렸다.

(정치적 문답)

1571년 36세

청주 목사에 임명되었다. 향약을 만들어 실시하였다.

 (선비 규범)

1572년 37세

3월에 병으로 사직하고 서울로 올라왔으며 여름에 율곡으로 돌아갔다.

이때 우계 선생과 그 유명한 이기설 논쟁을 펼쳤다.

야외 전시

문화재 자료 

1574년 39세

우부승지에 임명되었다. 만언봉사를 지어 시국을 바로 잡으려 애썼다.

(임금께 아뢰는 상소문)

1575년 40세

성현들의 말과 글을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라는 주제에 맞춰 정리한 성학집요를 지었다

( 유학의 기본 입문서 해설집)

1577년 42세

학문을 시작하는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격몽요결을 지었다.

(학문에 처음 입문자를 위한 책)

향악을 만들고(선비 규범) 사창제도를 (선비와 일반인 대상으로 한 규범)

 실시해 백성들을 경제적으로 구제하기에 힘썼다.

1578년 43세

우리나라 최초인 사립대학인 은병 정사를 건립하고 고산구곡가 (고산의 아홉 굽이 경치에 대한 시조 )를 지었다

1581년 46세

임금에게 청하여 백성들을 구제하는 방책을 회의하게( 여럿이 모여 의견을 교환하여 의논하는 기관) 했다.

홍문관 예문관 대제학에 임명되었다.

경연일기를( 군신 간의 논란이 되었던 주요사건과 인물 관한 평론 글) 완성했다.

1582년 47세

왕명으로 인심도심설, ( 율곡의 철학사상 요약) 김시습전 ( 김시습에 관한 글). 학교 모범( 학업 하는 자에 대한 수양서)을 지어 올렸다.

1583년 48세 선조에게 시무 6조를( 시급히 실천해야 할 여섯 가지 병무) 바쳤다. 이 시가에 십만 양병과 공밥 제도 개혁을 주장했다.

1584년 49세

1월 16일 음력 서울 대사동<현 인사동> 집에서 숨을 거두었다. 경기도 파주 자운산 기슭 선영에 묻혔다.

강릉 시립 박물관

따뜻한 인간애

율곡이 다섯 살 때 큰비가 내려 앞 시냇물이 넘치게 되었다.그때 어떤 사람이 내를 건너오다 미끄러져 위태롭게 되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손뼉을 치며 웃었지만 율곡만 혼자서 기둥을 끌어안고 걱정하다가

그 사람이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서야 안심하였다고 한다.

율곡 이이의 가르침

학문이란? 학문이라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가 되어서는 자애롭고, 자식이 되어서는 효도하고,

신하가 되어서는 임금에게 충성하고,부부간에는 분별이 있고, 형제간에는 우애가 있고,

젊은이는 어른을 공경하고, 친구 간에는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고분 집 자리

친구에 대한 자세

친구는 반드시 배우는 일과 착한 일을 좋아하는 사람, 행실이 바르고 엄숙한 사람,

곧고 진실한 사람을 사귀어야 한다. 그와 함께 있으면서 내 마음을 비워

그 사람의 규범과 경계를 받아들여 나의 단점을 다스려야 한다.

게으르고 장난을 좋아하며 말이나 꾸미고 정직하지 못한 사람과는 사귀지 말아야 한다.

몸과 마음의 자세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데는 몸가짐이 필요하다

발은 무겁게, 손은 공손하게, 눈은 단정하게, 입은 다물고, 목소리는 조용하게, 머리는 바르게,

기운은 엄숙하게, 서 있는 것은 반듯하게, 얼굴빛은 씩씩하게 가져야 한다,

학문과 지혜의 자세

학문을 진전시키고 지혜를 높이려면 아홉 가지 생각이 필요하다.

볼 때는 똑바로 볼 것, 들을 때는 총명할 것, 얼굴빛은 온화할 것, 용모는 공손할 것,

 말은 충성 되게 할 것, 일할 때는 공경할 것, 의심날 땐 물을 것, 분할 때는 참을 것,

재물을 얻을 땐 옳은가를 생각해야 한다.

독서하는 자세

책을 읽을 때는 단정히 앉아서 마음을 모으고 뜻을 극진히 하여 골똘히 생각하고 깊이 연구하여야 한다.

이렇게 해서 글 속에 담긴 뜻을 깊이 이해하고 구절마다 반드시 실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만일 입으로만 읽고 마음으로 본받지 않거나 행동으로 실행하지 않는다면,

책은 책대로 나는 나대로 되고 말 것이다. 이렇게 책을 읽으면 아무리 많은 책을 읽는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두서없이 분주한 관람이었던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이렇게 스치듯 관람하는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다시 방문할 때는 꼼꼼히 살펴야겠습니다.

이 나이에 어디 사용할 일이 없다 해도 아는 것이 힘이니까, 다시 방문할 이유 충분하겠지요?

무더위가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맹렬한 태양은 오늘도 위세를 떨칩니다.

가끔 내리는 반가운 비 소식은 후덥지근한 열대야를 식혀주기도 합니다.

힘내시고 이 여름 건강하게 보내시고 좋은 일이 가득하기를 빕니다.

 

 

 

반응형
0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