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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에스파냐 (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의 문양 )

배움ing 2014. 10. 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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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에 서늘함을 느껴 이젠 문을 닫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지금쯤 에스파냐는 날씨가 어떠한지 궁금하군요.

벌써 몇 달이 지났건만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는 에스파냐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나라인 것 같습니다.

알함브라 궁전의 구석구석은 이슬람 문화가 꽃피운 곳이라고 합니다.

다음에는 우리 문화에 대한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살짝 마음에 찔림을 받으며 글을 적어갑니다.

이 문장은 카를로스 5세의 문장입니다.

 

 

 성서에서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이삭 두 자녀를 두게 됩니다.

첫째 자녀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뜻에 의한 자녀를 얻은 것이 아닌

 인간의 조바심 가운데 이방 여자에게서 얻게 된 아들이 이스마엘이라고 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하나님의 뜻대로 허락하시는 아들 이삭을 얻게 되어

아브라함과 사라는 늦은 나이에 하나님의 축복으로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어떤 일에 대하여 진득하니 기다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사라의 여종 하갈로 하여 자신의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갈이 임신하게 되자 자신의 신분을 잃어버리고 사라를 함부로 여기게 됩니다.

 

 

 

 이를 견디다 못한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하소연하기에 이르고

나아가 하나님께도 자신의 처지를 기도하게 됩니다.

간단한 기도가 아니라 절규였을 거 같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듣고 사라의 근심을 덜어주려 이스마엘을 가진 여종 하갈을

주인인 사라에게 뜻대로 하라고 내어줍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이 자라나던 어느 날 이스마엘이 이삭을 조롱하게 된다고 합니다.

사라는 다시 이 사실을 아브라함에게 고하고 이에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하갈을

 먼 곳으로 떠나보내게 됩니다.

 

 

 

 

 먼 길을 무작정 떠나던 이스마엘은 가지고 가던 양식이 바닥이 나자

굶주린 이스마엘을 보다못해 하갈이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게 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스마엘도 강성하도록 도와주신다는 응답을 주시기에 이릅니다.

 

 

 

 

 끊임없이 부딪히는 중동지역의 분쟁은 이미 예견된 분쟁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아들이 아닌 이스마엘 중동 지역의 많은 이슬람인이

 이스마엘의 후예이지 않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흐르고 흐른 시간 속에 이슬람은 지금도 중동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를 대상으로 국가 간의 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이유 없이 생겨난 생명은 없겠지만,

 성서를 근거로 이스마엘 후손들이 이슬람민족이라 여기게 되는군요.

팔레스타인도 생각하게 됩니다.

 

 

 

 

 신께서 각 사람에게 여러 가지를 선물로 주셨는데

이슬람 민족에게는 손으로 만들어지는 것에 대한 특별한 은총을 주신 거 같습니다.

세계 여러 곳에서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우며 살아온 세월 중

이슬람은 7세기 아라비아 반도 홍해연안의 도시에서 무함마드를 크게 부흥케 하시어

이슬람인은 북쪽 동쪽과 서쪽으로 흩어져 자신만의 나라를 세우게 되고

서기 711년 스페인 남부지역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아라비아반도에서의 이슬람의 등장은

 종교는 물론이고 정치 사회 문화 사상의 모든 영역에 전환점을 가져다주었다고 합니다.

이슬람 신도라고 말하는 모슬렘은 이슬람의 원년 622년 예언자 무함마드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홍해연안의 도시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서부 헤자즈지방에 있는 도시로 이주한

622년을 기점으로 아라비아반도의 역사를 구분 했습니다.

 

 

 서기 711년 아라비아반도의 정치상황은

무함마드 사후 정통 칼리파(종교 지도자) 시대를 맡게 된다고 합니다.

합의에 따라 무함마드의 정치 종교적 권위를 계승했던 종교 지도자 시대는

서기 661년 우마 위야 가의 무아위야에 의해 끝나게 되고

종교 지도자의 자리는 우마 위야 에게 세습되었다고 합니다.

750년에 이르러서는 시리아 사막 중심부에 있는 오아시스를 기반으로 이슬람 세계를 통치하던 우마 위야는

종교지도자를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세력을 펼치던

압바시야에게 넘겨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마 위야 집안의 한 사람인 아부 알 무타리프 압두 라호만 빈 무아위야가 탈출에 성공하여

 당시 20세 된 청년은 모로코를 거쳐 스페인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756년 자신을 독립된 압두 알 라흐만 1세라 칭하고 코르도바를 중심으로

 알 안달루스 왕조를 일으켜 세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안달루스 왕조는 이슬람 세계의 서쪽 끝에서 후기 우마 위야 문화를 펼치게 되었으나

 11세기 이후 왕국은 분열되기에 이르러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는 세비야로 옮겨지게 되었답니다.

한편, 그라나다 지역에서는 1228년 그라나다 왕국이 탄생하였고

후일에 무함마드이븐 유스프 이븐 나스르가 자신의 이름으로 나스르 왕조를 일으키게 됩니다. (1238~1492년)

나스르 왕조는 안달루시아를 지킨 마지막 이슬람 왕조가 되었다고 합니다.

 

 

 

 

 나스르왕국의 통치자는 알함브라를 건설하여 기독교군에게 끝까지 저항하려고 했지만

그라나다의 통치자 유수프 1세와 무함마드에 이르러

스페인에서 모슬렘의 통치는 끝을 맺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시대의 배경으로 탄생한 알함브라는 나스르왕조의 말기문화를 보여주고 있고

이슬람식의 아름다운 건축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그 어떤 인물이나 짐승을 새기는 것이 교리에 어긋나기에

직선이나 곡선의 교차로 이루어지는 무늬로 만들어지거나

원. 삼각형 등의 여러 도형을 규칙적으로 배열한 무늬가 특징적으로 많이 있더군요.

그런데 그 무늬가 어찌 보면 화려하고 어찌 보면 순수함을 느끼게 하는 단조로움도 있어

싫증을 낼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 

식물모양을 새기는 방식도 있는데 모두 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예술의 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작은 소양으로 표현하려니

 알함브라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있어 큰 감동을 작게 표현하게 되어 애석함이 가득합니다.

훌쩍 지나간 시간이지만 마음은 아직도 두근거리는 감동을 한답니다.

모두가 행복한 인생이기를 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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