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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포르투갈

포르투갈 ( 버스에서 바라본 예수상 )

배움ing 2014. 8. 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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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삶의 결과로 겪게 된 일을

포르투갈의 예수님 상을 통해서 생각해봤습니다.

남미 쪽에서 브라질만이 포르투갈어를 쓰게 된 까닭이 있네요.

서른두 살의 청년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 (1468~1520)

페드루는 바스쿠 다가마의 탐험의 놀라운 성공신화를 따라

젊은 마음속에서는

다분히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겠지요.

젊은이여 야망을 품어라!

 

 서른두 살의 두려움이 없는

용기백배한 청년이었겠지요.

바스쿠 다가마의 후발주자로 나서게 된 페드루는

열세 척의 함선을 이끌고 1500년 8월에 인도로 출발하였답니다.

준비도 철저히 했기에 절대 성공함을 믿었겠지요.

 

 

 페드루는 바스쿠 다가마가 밟았던 항로를 그대로 따라갔지만,

아프리카 연안에서 갑자기 돌변한 강풍으로 표류 하던 중

정해진 계획대로 가려던 길을 놓치게 되었답니다.

그 결과로 커다란 원뿔 모양의 산이 있는 육지에 도착하게 된 페드루,

원래 계획에 있던 인도는 도착하지 못하고

브라질에 도착하게 되었다는군요,

한나라는 새로운 성과로 칭송해야 할 일이지만,

브라질에는 비운에 휩싸이게 되었겠지요.

다른 나랏일이지만

자유를 잃는다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캄캄함이었을 거 같습니다.

우리도 일제 36년 을 겪게 되어

나라 잃은 서러움으로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치러야 했으니까요.

  

 

 현재는 독립국 브라질이지만 브라질이 리우데자네이루 코르코바두 산

어휴 이름도 너무 길어요. 산 이름이

그 산정상에는 높이 38m에 양팔을 벌려 만든 길이가 28m고 무게만 해도 1,145톤이나 될 뿐 아니라

 산 높이 710m의 산 정상에 세웠다고 합니다.

 생각하는 건 실제 보는 것에 미치지 못하지만 실제로 보면 그 느낌은 훨씬 더 크게 와 닫는다고 합니다.

한편으론 그 침략을 계기로 야만적인 풍습에서 신속히 벗어난 결과는 기쁜 일이나

인간의 자유를 억압받는다는 건 힘든 고통이라 생각됩니다.

1926년부터 1931년까지 6년에 걸쳐 에이토르 다 실바 코스 타의 설계로

지어진 예수상은 내부에 예배 드릴 수 있도록 갖춰있고

2007년 신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지정되었는데그 일에 대해 찬반논쟁이 일어나기도 했다고 합니다.

놀라운 일이긴 합니다.

 

 아래는 바스쿠 다가마 다리입니다.

 

 그 높은 산 정상에 150명이 함께 예배드릴 수 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놀라운 결과이지요,

이 예수상을 건립하게 된 이유는 포르투갈에서 독립 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고자 세운 것이라고 하니

독립에 대한 열망은 끝이 없어 그 이상의 건축물도 만들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이 너무 길었지만

바로 아래의 예수님 상은 브라질 것이 아닌 바로 포르투갈에 세워진 예수상입니다.

테쥬강을 바라보고 있는 브라질 예수상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예수상은 브라질 예수상을 만든 후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포르투갈에서 독립한 것을 기념하여 만든 것인데 이 조각상을 세상에 본떠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토레데 벨렘 동상

이 탑은 레스텔로항구를 보호하기 위해 1521년에 만들었다는군요.

레스텔로 항은 항해자들이 바다로 떠나는 출발지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과거의 영화를 생각하면 애석하겠으나 당사국인 브라질에는

독립의 기쁨을 기념하여 만든 것인데 하여간

기단 75m에 예수상 28m의 크기로 엘리베이터까지 만들어져

 타고 올라가면 테쥬강과 리스본을 한눈에 다 볼 수 있는 전망대의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군요.

 

 

 

 

 잉 그럼 저기도 안 가고 여기도 안 가본 여행.

 지나는 차창 밖을 보며 가이드님의 구성진 입담에 의존하여 아하 라는 이 말을 하고 지나가 벼렸답니다.

애석한 이 순간이여.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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