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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의 노래

구름에 실어 바람 편에 부치는 편지 [ 잊지 못할 추억 ]

by 배움ing 2011. 11. 23.

 

 

 

 

 

 

내 고향은 심산유곡은 아닐지언정
나름대로 추억이 깃든 행복의 순간들이 새기어져 있습니다.
아침을 깨우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하루가 시작되어 늑장 부리는 딸에게 재촉함을 쉬지 않았지만,
학교가 바로 집 옆인데도 딱히 개근상 한번 타지 못한 나는
날마다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느라 학교 정문으로 가기보다는
개구멍으로 드나들어 반질반질 길을 만들 정도로 그랬었답니다.


 

 


총명함으로 엄마에게 즐거움을 안겨주었던 내 동생
내 동생이 있어 마음이 시리지 않답니다.
동생이 있어 마음이 그다지 외롭지 않답니다.

내 동생아 !
집에서 조금 걸어가면 앞쪽으로는 사투리로 대부뚝(둑)이 있어 ,
봄이면 나물도 캐러 가고
특히나 삐비 라는 풀도 뽑아 재미로 까서 먹었었는데 기억하니?
밀이 심어져 있는 사이로 까만 깜부기를 뽑아서 먹기도 하고
메뚜기를 잡아 기다란 방아 풀줄기에 꿰어 잡았는데
동무들과 나물 캐러 다녔었고
아버지가 쉬시는 일요일엔 아버지하고 송사리.넙치. 작은 새우. 붕어 잡으러
따라다녔었지
아버지는 붕어 말려서 김치나 우거지에 지져 드시는 걸 좋아하셨나 봐
모심는 날이면 엄마는 찐빵을 만들어 모심는 아주머니들에게 주셨고
기억할지 모르지만 동그랗고 속에 팥이 들어 있는 찐빵

여름이면 유유히 흐르는 만경강 줄기인 강에서 모시조개도 잡고 강가에서 참게도 잡았었는데
밤이면 냇가에서 물놀이 개헤엄을 치면서 놀았었고
사실 밤에 엄마 몰래 물놀이하러 나가는 언니 따라서 갔었지
엄마한테 야단맞을까 봐 나를 데리고 다녔나 봐 언니가
비 오는 날이면 콩. 쌀을 사카린을 넣고 볶아주셨고 부침개도 만들어 주셨었지!

가을이면 햇찹쌀로 떡도 만들어주고(내생일)
외가에서 고구마.땅콩 등을 보내왔었지
밭농사를 하지 않았어도 외가에서 넉넉한 가을걷이를
보내주셨었단다.
윗목에 군것질거리가 항상 있어 이가 썩는 줄도 모르게 자다 일어나 먹곤 했었단다.
그래서인지 이가 아파서 흑흑흑 무척 고생했던 어린 시절이었지
가끔 들어오는 선물 중
동그랗고 작은 노란 감귤(어릴 때 사투리로는 밑 깡)
일본에서 바다 건너온 아주 조그만 밑 깡을 그때는 너무도 신기한 듯
작은 조각 한 개씩 아껴서 먹었던 1960년대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단다.

알지!
무척이나 싸웠던 너와 나는 잠자기 전까지 다투었다고 할 정도였지
밥 먹다가 싸우게 되면 단호하게 밥 바꿔먹게 했던 우리 엄마
우리는 딸 부잣집
우리 뒷집은 아들 부잣집
엄마는 항상 우리를 야단치실 때 뒷집은 꽁보리밥만 먹어도 싸우지도 않고
잘 지내는데 라며 우리가 싸우면 뒷집의 보리밥과 바꾸어 먹게 하셨었지
울면서 바꾸어 먹었던 꽁보리밥 생각나니?

고모는 다른 세상으로 가셨지만, 고모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섭섭해하시면서
우리 엄마에 대해서 좋지 않은 생각을 하고 계셨는지
돌아가신 엄마의 흉을 ㅠㅠㅠ
고모 집에 가는 것을 좋아했던 우리는 고모 집에 아버지 따라간다고 하면
엄마는 가지 못하게 하셨는데
고모는 그 이유가 보리밥 먹는 고모 집에 가서 보리밥 먹고 체할까 봐
못 가게 하셨다고 우리 엄마 흉+ 비난을 하시더구나
지금 생각해보면 노름을 하시던 고모부 노름 빛을 아버지가 엄마 몰래 갚아준 것이
탄로 나서 엄마도 고모에 대해 미운 마음이 일어나 그랬던 게 아닐까? 라는
내 엄마를 두둔하는 마음이란다.




하늘나라에서 고모와 만나 지난 회포. 오해 등등을 해결하고 평화의 마음으로
살아가실 거라는 생각을 재밌게 해본단다.

이천 년대를 살아가는 지금
기상이변으로 긴장하며 살아가고 있지
금수강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는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만끽할 수가 있는 뚜렷한 사계절이 있지만
 예전과 달라진 계절임을 느끼고 있단다.
내 동생의 멋진 현재와 내일의 삶을 축하하면서 
그리움과 사랑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구름에 실어 바람 편에 이 글을 부친단다.
자랑스러운 우리 조국이여 영원하여라~~
자랑스러운 내 동생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