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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독립운동가 [ 이 회 영 님 ] 본문

산들 바람에 부치는 편지/내마음의 노래

위대한 독립운동가 [ 이 회 영 님 ]

배움ing 2011. 2. 19.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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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살아가고 많은사람을 만나게 되고 만남의 계기가 책을 통해서 이기도 하고
또 실제 만남을 통해서 존경하는사람을 만나기도 하지요.
또 여려가지 계기를 통해서 존경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요.
제가 존경하는 분을 소개드리고 싶어요.
비록 그분에 대하여 많은것을 알지못하고 소개글도 미흡하게 쓰고 있지만은 
제가 살아오는동안에 최고로 존경할
분을 알게 되었답니다.
10 여년전 큰딸이 대학다닐때 필독서로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저도 읽게 되었는데
강희대제 전족이야기 등등 너무 재미있게 읽었고 어찌나 재밋던지 다시 생각나는 책들이었거든요. 

어느날 딸이 가져온 낡은 책 한권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 )이라는 책을
빌려온 딸덕에 저도 읽게 되었는데 책을 읽고나서
내마음 나도 모르게

위대한 인물 존경한는분이 되어버렸답니다.
어느 인물을 내세워 존경한다고 말하기는 참어려운것 같은데 
일평생 사는동안 저는 40대에 존경하는 대상을 찾게되었답니다.
그때의 그 마음 정말 뭐라할수없는 놀라움과 감격의 순간 이었답니다.
 모습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가치관도 달라 각각의 존경하는 대상도 다르겠지만 
저만의 존경하는분을 만나게된 저는 위대한 삶을 살다가신 독립운동가 이 회영님을 존경합니다.

공직자들의 바른실척적인 모델이 된다는 생각도 해본답니다.
많은것을 알지못하지만.....
그분의 존함은 우당 이 회영님

 

살아가면서 각사람은 존경하는 분이 있겠지요?
저도 그렇답니다.

제가 존경하는분은 <독립운동가> 이회영님 이십니다.

백사 이항복의 11대 후손인 우당 이회영님1867ㅡ1932>

  8대를 이어 판서를 배출한 명문가. 세도가 이기도 하고
 대 부호라고 할정도의 최고의
가문임에도 불구하고

 이회영님 여섯형제들이 국가의 존폐위기의 기로 에서는

하나된 마음 이었다는 데도 경의를 표합니다

 

1910년 59명의 식솔을 거느리고 추운 12월 살을 에이는 혹한에

당시 3만섬의 재산<지금의 가격으로는 600여억원>을 단호히 처분하고

인간의 본능 이기도한 편안한 삶을 뒤로하고 살얼음판을 걷는듯한 날들을 살아가며 국가 독립에 생명을 바쳤답니다.

 

인간은 잘먹고 잘입고 잘쓰고 상류 생활을 즐기며 살아가고

 더 끊임없이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나가는것이 어쩌면 

인간의 본능이라  말할수 있을 터인데....


형제중 한분 이라도 마음과 생각이 분열 분산되지 않고

하나로 모아짐도 숙연히 고개가 숙여질만한 일인데 온 식솔까지 거느리고

과감히 독립을 위해 삶을 바치고 가족을 바치며 가문을 바친 이러한 가문이 있을런지요...

결코 이런 가문은 찾기 힘들거라 생각합니다.

세계역사에서도 이러한 가문이 있을까 눈을씻고 찾아도 없을거 같다고 생각한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50대의 주부 이지만 정말 생각만해도 숙연 해진답니다.

1910년 44세의 나이에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 무관학교를 설립

전천후 독립운동가를 배출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바쳐

싸우면서 배우면서 일하면서 극한의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애국 애족에 모든것을 희생하신 님을 존경합니다.

 

첫째 이신 이건영님<1853ㅡ1940>과 그분의 아들들도 독립운동에 힘쓰다 병사하시고

 

둘째 이신 이석영님1855ㅡ1934은 당대 제일가는 재산가로 자신의 모든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에 다쓰고

중국 각지에서 활동하시다가 상해에서 숨을 거두시고

석영님의 자녀들도 대부분 독립운동에 힘쓰다가 생명을 잃으셨다고 합니다.

 

셋째 되시는 이철형님도 신흥무관학교의 교장으로

많은 독립운동가를 교육 배출하시는데 기여하시고 독립운동에

활동 하시다가<1863ㅡ1925>병사 하셨다고 합니다.

 

넷째 이신 이회영님도 20 여년을 독립운동에 힘쓰시다가

 예순여섯의 나이에 붙잡혀 모진 고문치사를 당하셨다고 합니다.

이회영님의 자제 대부분도 독립운동에 헌신하시고

순국하신 아름다운 피흘림의 댓가로 자주 대한민국이 존재함에 감사 경의를 표합니다.

 

여섯째 인 이호영님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1933년 그분의 아들들도 함께  실종되었고

 

유일하게 살아 돌아오신 다섯째 인 이시영님<1869ㅡ1953>은 초대 부통령까지 지내셨으나

이승만 대통령의 전횡<독재>에 반대하여 부통령을 사임하시여

시대의 어쩔수없는 상황 여건과 타협치 않는

가문의 신념을 굳게 지키신 분이십니다.

 

공산주의도 아닌 자유평등에 기초해서 독립운동가의 삶을 살다가신 ...독립운동가문..

많은것을 알지못하는 주부 지만

이회영님의 이상과 신념은 정말 모든 공무원의 표상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답니다.

 

나라의 녹을 받아 대대로 누려오던 부귀영화

국가가 존폐위기의 기로에 섰을때에 조국위해 아낌없이 모든것을 내어주었던 이회영님

 저의 표현은 너무나도 작고 너무 작지만은

독립운동가 이 회영님을 존경하며 살아갑니다.

 

 과거 독립운동가의 후손들과

친일했던 친일의 후손들은 현재도 너무도 다른 천지차이의 삶을 산다고 생각할때에

국가적 배려가 절실히 구석구석

있어지기를 바라고 있답니다.

100억대의 재산을 모아 국방에 써달라고 국방부에 쾌척하신 <중소기업운영 김용철>옹의

말씀중에 감동이 서려있는 말이 생각나서 적어봅니다.

 

인생은 유한하나 국가는 무한하다.

 

8월의 달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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